장자 내편 이야기 - 완결/원문 번역(하단 주석)

<하단 주석> 장자 내편 - 1 - 소요유 - 4 - 장자와 혜자가 가죽나무를 가지고 대담하다(끝)

달마시안TV 2021. 9. 1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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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보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원래 (음영)으로 처리해 둔 주석을 숫자로 바꾸고 하단으로 내려 두었습니다. 원래 글은 물론 원래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주석을 하단으로 내리니까 정작 중요한 주석과 중요하지 않은 주석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지더라구요. 그래서 본문에다가 '*' 같은 것으로 표시해 둘까, 혹은 다르게 어떻게든 표시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느니 원안을 보존하고 새로 글을 파 두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기가 편한 것이 우선이냐, 주석이 우선이냐, 모두 일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 편한 방식에 맞게 글을 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주석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편》 번역에는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이민수(李民樹)의 2007년 번역, 현암사에서 나온 안동림(安東林)의 2019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安炳周)와 전호근(田好根)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이 글을 작성할 때는 王先謙의 《莊子集解》, 郭慶藩의 《莊子集釋》를 참고하였습니다. 두 책은 모두 淸나라 말기에 《장자》에 대한 주석들을 취합하고, 편저자인 王先謙과 郭慶藩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여 둔 글입니다. 본래 《장자》의 주석으로는 郭象의 《注》, 成玄英의 《疏》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郭象의 말은 간혹 핵심을 찌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현학적이라서 사람들이 칭송한 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成玄英은 대체로 논지가 郭象과 비슷하지만, 문장이 상세하여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다만 도교 도사의 입장에서 해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莊子集釋》에서는 이 두 주석과,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실린 주석을 아주 충실히 인용하고, 또 간혹 兪樾, 郭嵩燾, 李楨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해 두었습니다. 간혹 郭慶藩 본인의 견해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莊子集解》에서는 郭象과 成玄英, 陸德明의 주석을 인용하되, 王先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고, 또 거기 王先謙의 견해를 붙여 두었습니다. 다만 《莊子集解》에는 宣穎, 姚鼐, 王念孫, 郭嵩燾, 兪樾, 蘇輿 같은 淸代 학자들의 견해가 인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또 참고할 만합니다. 부분적 발췌이긴 하지만, 《莊子集釋》에는 宣穎이나 姚鼐, 蘇輿 같은 학자들의 견해는 아예 실려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莊子集解》와 《莊子集釋》에서 인용한 모든 인용문이 인용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선학들의 견해가 제 견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인용하여, 옛 견해는 이러하였다는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하였습니다. 본문은 몰라도, 주석에 대한 번역문에는 아마 오역이 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장자》, 《장자 내편》,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向秀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인간세」, 「제물론」, 「응제왕」,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글이나 유명한 글은 한글로 표기하고, 다른 책이거나 유명하지 않은 글은 한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유명하냐, 유명하지 않냐의 기준은 제 주관입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양생주」에 ≪足丌≫이라는 예가 있었습니다.

* 《내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최범규, 유형주, 홍용현과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5월 1일 16시 46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해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67

 

장자 내편 - 1 - 소요유 - 해설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주석을 본문과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66

 

장자 내편 - 1 - 소요유 - 4 - 장자와 혜자가 가죽나무를 가지고 대담하다(끝)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

philosophistory.tistory.com

 

 


 

 

** 이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 교보문고를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전문을 다 읽으시려면 책을 구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莊子內篇孃注》, 李相珉, 책과세계)

 

**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번역문 전체 및 주석 일부입니다. 그러나 번역문과 주석 모두 중간 부분을 {...}라는 표시로 비워 뒀습니다. 책을 구입하기 전 열람할 수 있는 견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두 개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 가능한 링크는 아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332426(양장본, 품절)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069155(문고판, 상권 및 하권으로 분절, 세트로 판매, 재고 있음)

 

 

3. 전자책

 

3-1.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405

(전자책, 교보문고, 합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1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16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35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63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2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410397

(전자책, 교보문고, 편별로 분권)

 

 

3-2. 리디북스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8?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1

(전자책, 리디북스, 합본)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1?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4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2?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5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3?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6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4?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7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5?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3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6?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8

https://ridibooks.com/books/5392000007?_s=search&_q=%EC%9E%A5%EC%9E%90%EB%82%B4%ED%8E%B8&_rdt_sid=search&_rdt_idx=2

(전자책, 리디북스, 편별로 분리)

 

 

惠子謂莊子曰:「吾有大樹,人謂之樗。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立之塗,匠者不顧。今子之言,大而無用,眾所同去也。」

 

莊子曰:「子獨不見狸狌乎?卑身而伏,以候敖者;東西跳梁,不避高下;中於機辟,死於罔罟。今夫斄牛,其大若垂天之雲。此能爲大矣,而不能執鼠。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彷徨乎無爲其側,逍遙乎寢臥其下?不夭斤斧,物無害者,無所可用,安所困苦哉!」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각주:1]

 

"내가 큰 나무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내 나무를 가죽나무라고 한다.[각주:2] 나무의 거대한 밑둥은 우툴두툴해서 먹줄을 댈 수가 없고, 나무의 잔가지는 구부러져 있어서 규나 구를 댈 수가 없으니, [나무가] 길[가]에 서 있어도 목수가 관심을 가지지조차 않는다.[각주:3] 요즘 니가 하는 말도 [내 나무처럼] 원대하기만 하지, 쓰일 데가 없으니, [목수들이 가죽나무를 보고도 지나쳐 버리는 것처럼] 사람들이 [니 설을 경청하지 않고] 떠나 버리는 것이다.[각주:4]"

 

[이에] 장자가 말했다.[각주:5]

 

"너는 분명 리성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리성은] 몸을 낮춰 숨어서는 돌아다니는 동물들을 노리며, 사방으로 날뛰면서 높고 낮은 곳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다가] 덫에 걸리기도 하고, 그물에 잡혀 죽기도 한다.[각주:6] 한편 리우는 그 크기가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을 만큼 크]다. [거대한] 리우는 큰 일을 할 수 있지만, 쥐를 잡지는 못한다.[각주:7]"

 

<장자의 말 이어짐>

 

"[이제 생각해 보자.] 지금 너는 큰 나무를 갖고 있으면서도 [나무가] 쓸 데가 없다고 걱정만 하고 있다. [너는] 어찌 아무것도 없는 교외나 허허벌판에 이 나무를 심어 두고는[각주:8], 목적 없이 그 곁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한가롭게 그 아래에 누워 있으려 하지는 않은 것이냐.[각주:9] [그러면 그 나무는] 도끼질에 요절하지 않을 것이요, [사람 같은] 외물도 [나무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가죽나무가] 쓰일 만한 데가 없다는 점이 어찌 [나무에게] 괴로울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각주:10]"

 

 

  1. 惠子謂莊子曰, ◈ 惠子謂의 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본문으로]
  2. 吾有大樹/人謂之樗, ◈ 吾는 1인칭 대명사다. 惠子를 가리킨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大는 관형어로, '{...}'이다. ◈ 樹는 체언으로, '{...}'다. ◈ 人은 체언으로, 다른 '{...}'을 이른다. ◈ 人謂의 謂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謂之의 之는 大樹를 가리킨다. ◈ 樗는 체언으로, '{...}'다. '{...}'라는 나무가 있다. '{...}'는 목재로도 쓸모가 있고, 잎을 먹을 수도 있다. '{...}'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樗는 '{...}'와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잎도 먹을 수 없고, 목재로도 쓸모가 없다. 그래서 '{...}', 즉 '{...}'라고 부른다. 成玄英은 樗/栲漆之類/嗅之甚臭/惡木者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敕魚反/木名,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世間名字/例皆虛假/相與嗅之/未知的當/故言人謂之樗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는 그 자체로 '쓸 모 없는 것'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人間世」에도 無用之用을 빗대기 위해 쓸모 없는 나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人間世」에 등장하는 나무들과, 이 {...}는 표상하는 바가 완전히 {...} 때문이다. 이 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본문으로]
  3. 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立之塗/匠者不顧, ◈ 其大本의 其는 가죽나무를 가리킨다. 其小枝의 其도 마찬가지다. ◈ 大本은 '{...}'이다. 大는 관형어로, '{...}'이다. 本은 체언으로, '{...}'이다. '{...}'로 해석되기도 한다. 《史記》「魏其武安侯列傳」에 枝大於本/脛大於股,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本은 '{...}'이다. ◈ 擁腫은 아마 용언으로, '{...}'라는 말일 것이다. 擁腫而不中繩墨은 '{...}'라는 말인데, 繩墨이란 {...}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擁腫은 아마 '{...}'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더 파고 들어 보자. 腫은 '{...}'이다. 擁은 아마 {...} 잘못되었을 것이다. 臃 역시 '{...}'이다. 그러면 擁腫은 臃腫이 되고, 이는 '{...}'이라는 뜻이 된다. 부스럼은 {...} 莊子는 나무 표면이 '{...}'라는 말을 擁腫, 즉 臃腫이라고 표현하였을 것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槃癭,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章勇反//李云/擁腫/猶盤癭, '{...}'라고 했다. 成玄英과 李頤가 '{...}'이라고 한 말이 모두 '{...}'를 뜻할 것이다. ◈ 擁腫而不中繩墨의 而는 '{...}'처럼 해석된다. 乃와 같다. 卷曲而不中規矩의 而도 그러하다. 而를 어떻게 乃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大戴禮記》 「曾子本孝」에 如此/而成於孝子也, '{...}'라는 말이 있는데, 而는 '{...}'으로 해석된다. 《禮記》 「檀弓 下」에는 而曰이라는 말이 있는데, 鄭玄은 而/猶乃也, '{...}'라고 하였고, 孔穎達 역시 而/乃也, '{...}'라고 하였다. 또, 《禮記》 「祭義」에 已徹而退/無敬齊之色/而忘本也,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도 而는 '{...}'이라고 해석된다. 이 사례들에서 而는 모두 乃라고 해석된다. 또, 《書》 「虞書 堯典」에 試可乃已,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史記》 「五帝本紀」에 試不可用而已, '{...}'라고 되어 있다. 《禮記》 「曲禮 上」에는 卒哭乃諱, '{...}'라는 말이 있는데, 《禮記》 「檀弓 下」와 「雜記 下」에는 卒哭而諱라고 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數之以其不用僖負羈/而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이 있는데, 《史記》 「管蔡世家」에는 余尋曹共公之不用僖負羈/乃乘軒者三百人, '{...}'라고 되어 있다. 王引之는 《史記》 「曹世家」라고 인용해 두었는데, 아마 「管蔡世家」를 착각한 모양이다. 다만, 「晉世家」에 數之以其不用釐負羈言/而用美女乘軒者三百人也, '{...}'라는 말은 있다. 또, 《史記》 「淮陰侯列傳」에 相君之背/貴乃不可言, '{...}'라는 말이 있는데, 《漢書》 「蒯伍江息夫傳」에는 相君之背/貴而不可言이라고 인용되어 있다. 而와 乃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혼용된 것이다. 이 사례들은 王引之의 《經傳釋詞》 「而」에 수록되어 있다. ◈ 不中繩墨의 中은 용언으로, 들어 '{...}'는 뜻이다. 不中規矩의 中도 그러하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陸德明은 丁仲反//下同, '{...}'라고 하였다. ◈ 繩墨은 체언으로, '{...}'이다. 나무를 가공하기 전에 표시하려고 대는 '{...}'을 뜻한다. 繩은 '{...}'이고, 墨은 '{...}'이다. ◈ 小枝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小는 관형어로, '{...}'이다. 枝는 체언으로, '{...}'다. ◈ 卷曲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卷과 曲은 모두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卷曲/不端直也//規圓而矩方,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本又作拳/同//音權/徐紀阮反//李丘圓反, '{...}'라고 하였다. 판본에 따라 卷 대신 쓰여 있다는 拳은 卷의 가차자이다. 「人間世」에 '{...}'라는 뜻으로 曲拳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는데, 曲拳은 卷曲과 같은 말로, 拳은 卷의 가차자로 사용되었다. ◈ 規矩는 체언으로, '{...}'다. 모두 목수가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規는 '{...}', 矩는 '{...}'를 뜻한다. ◈ 立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立之塗의 之는 之於와 같다. '{...}'라는 뜻이다. 《禮記》 「少儀」에 仆者右帶劍/負良綏/申之面/拖諸幦,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申之面/拖諸幦는 의미상 대구를 이루고 있다. 즉, 申之面의 之는 拖諸幦의 諸와 같이 해석되어야 한다. 《孟子》 「滕文公 上」에는 禹疏九河/瀹濟漯/而注諸海//決汝漢/排淮泗/而注之江,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서 역시 而注諸海와 而注之江은 의미상 대구를 이루고 있으므로, 諸와 之의 역할은 동일해야 한다. 이 사례들이 之가 諸의 의미로 사용된 사례들이다. 王引之는 之/猶諸也//諸之/一聲之轉, '{...}'라고 하였다. 之가 於를 대신하여 사용된 경우도 있다. 《大戴禮記》 「曾子事父母」에 養之內/不養於外/則是越之也//養之外/不養於內/則是疏之也, '{...}'라는 말이 있는데, 養之內와 不養於外, 그리고 養之外와 不養於內는 모두 의미상 대구를 이루고 있고, 之가 於의 의미라고 해석되고 있다. 《荀子》 「勸學」에 目好之五色/耳好之五聲/口好之五味,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도 之는 於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王引之는 之/猶於也//諸之/一聲之轉//諸訓爲於/故之亦訓爲於, '{...}'라고 하였다. 이 예시와 설명들은 《荀子》의 예를 제외하면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之」에 기술되어 있다. ◈ 塗는 체언으로, '{...}'이다. 成玄英은 道, '{...}'이라고 하였다. ◈ 匠者는 명사구로, '{...}', 즉 '{...}'를 이른다. 따져 보면, 匠은 관형어로, '{...}'이라는 말이다. 者는 '{...}'이 된다. 「人間世」에 匠石이라는 목수가 나온다. ◈ 顧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는 뜻이다. ◈◈ 成玄英은 樗栲之樹/不材之木/根本擁腫/枝榦攣卷/繩墨不加/方圓無取/立之行路之旁/匠人曾不顧盼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惠子의 관점에서는 {...}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본문으로]
  4. 今子之言/大而無用/眾所同去也, ◈ 今은 '{...}'이다. ◈ 子는 2인칭 대명사로, 莊子를 이른다. ◈ 子之言의 之는 {...}다. ◈ 言은 체언으로, '{...}'이다. 道에 대한 {...}을 이른다. ◈ 大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근거는 이렇다. 惠子는 {...}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죽나무는 크지만 정작 쓸 모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郭慶藩은 '{...}'라고 해석했다. 郭慶藩은 大而無用/猶言迂遠無當於事情也//禮文王世子況于其身以善其君乎/鄭注曰/于讀爲迂/猶廣也/大也///是大與迂同義//老子道德經云/天下皆謂道大似不肖/亦此大字之義, '{...}'라고 하였다. 《禮》는 《禮記》다. 지금 「文王世子」에는 況於其身以善其君乎로 되어 있으며, 鄭玄의 注도 於讀爲迂/迂猶廣也/大也로 되어 있다. 于가 於로 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같다. 《道德經》 인용문은 아마 67장으로 보이는데, 《道德經》에는 天下皆謂/我道大/似不肖, '천하 사람들은 모두 내 道가 大하여 不肖한 듯하다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 郭慶藩의 인용문에는 我가 빠져 있다. 郭慶藩은 大와 迂의 의미가 통하기 때문에, 《道德經》 67장의 大 역시 역으로 迂로 해석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자신의 말을 증명하고 있다. 67장의 大를 '{...}'라고 보면, '{...}'라고 하여 大와 不肖의 의미가 잘 안 맞게 돠지만, 大를 迂, '{...}'라고 하면 67장은 '{...}'라는 말이 되니 문맥이 자연스레 이어지게 된다. 郭慶藩의 말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글의 구조를 감안한다면 '{...}'라고 하는 편이 더 잘 맞을 듯하다 ◈ 大而無用의 而는 역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만약 大를 '{...}'처럼 부정적으로 해석한다면 而는 순접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用은 체언으로, '{...}'다. ◈ 眾는 체언으로, 大衆이라는 말처럼 보통 '{...}'을 이른다. 이 글자는 《莊子集釋》에는 眾이라고 되어 있고, 《莊子集解》에는 衆이라고 되어 있다. 같은 글자다. ◈ 所는 '{...}'이다. ◈ 同은 부사어로 '{...}'라는 말이다. ◈ 去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따라서 眾所同去는 '{...}'라는 말이 된다. 사람들이 莊子의 설에 모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陸德明은 如字//李羌呂反,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樹既擁腫不材/匠人不顧//言亦迂誕無用/眾所不歸//此合喻者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猶言棄而不取,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5. 莊子曰 [본문으로]
  6. 子獨不見狸狌乎//卑身而伏/以候敖者/東西跳梁/不辟高下/中於機辟/死於罔罟, ◈ 子는 2인칭 대명사다. 惠子를 이른다. ◈ 獨은 부사어로 '{...}'라고 보면 좋겠다. ◈ 見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狸狌은 동물 이름이다. 狸는 '{...}', 狌은 '{...}'를 이르는데, 狸狌이 동물 두 마리를 이르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날렵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 '{...}' 같은 부류가 아닐까 한다. 成玄英은 狌/野貓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狸에 대해 力之反, '{...}'라고 하였고, 狌에 대해서는 徐音姓//郭音生//又音星//司馬云/㹨也///㹨/音由救反, '{...}'라고 하였다. ◈ 乎는 {...}다. 즉, 子獨不見狸狌乎는 '{...}'라는 말이고, 이는 곧 '{...}'라는 말이 된다. ◈ 卑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身는 체언으로, '{...}'다. ◈ 卑身而伏의 而는 순접이다. '{...}'처럼 해석된다. ◈ 伏은 용언으로, '{...}'는 뜻이다. ◈ 以는 '{...}'라는 말이다. 卑身而伏을 받는다. ◈ 候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문맥상 '{...}'라고 보면 좋겠다. ◈ 敖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아마 {...}을 형용한 말이 아닐까 하다. 陸德明은 徐李五到反//支云/伺彼怠敖/謂承夫閒殆也///本又作傲/同//司馬音遨/謂伺遨翔之物而食之/雞鼠之屬也, '{...}'라고 하였다. ◈ 以候敖者의 者는 아마 也로 해석해야 하겠다. 문장을 끝내는 조사다. 也가 者로 해석될 수 있듯이, 者도 也로 해석될 수 있다. 《論語》 「陽貨」에 惡紫之奪朱也/惡鄭聲之亂雅樂也/惡利口之覆邦家者,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者는 다른 句의 也와 대구를 이루고 있고, 또 그 쓰임 역시 也와 같이 조사다. 王引之는 《皇侃本》에는 者가 也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 점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國語》 「鄭語」에는 公曰/周其弊乎///對曰/殆於必弊者, '{...}'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서의 者 역시 也처럼 조사로 사용되었다. 金在烈은 《四部備要本》에 者也라고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四部備要本》을 펴낸 사람이 者가 也의 역할을 하는 줄 모르고 문장을 끝내려고 也를 더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예들은 모두 王引之의 《經傳釋詞》 「者諸」에 수록되어 있다. ◈ 東西는 아마 부사어로, '{...}', 즉 '{...}' 같은 표현인 듯하다. ◈ 跳梁은 아마 용언으로, '{...}'라는 말로 보인다. 跳는 '{...}'라는 말이다. 梁은 아마 𨄈의 가차자일 것이다. 𨄈 역시 '{...}'라는 말이다. 成玄英은 跳梁/猶走躑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跳에 대해 音條, '{...}'라고 하였다. ◈ 不辟의 辟는 避와 같다. '{...}'는 말이다. '{...}'로 읽는다. 나는 '{...}'라고 의역하였다. 陸德明은 音避//今本多作避//下放此, '{...}'라고 하였다. 王先謙은 辟音避, '{...}'라고 하였다. ◈ 高下는 체언으로, '{...}'이다. ◈ 中은 용언으로, '{...}'는 용언이다. 機辟은 '{...}'이므로, 中은 덫에 '{...}', 함정에 '{...}'처럼 해석해야 한다. ◈ 中於機辟의 於는 '{...}'다. 機辟을 받는다. 死於罔罟의 於도 그러하다. 罔罟를 받는다. ◈ 機辟은 체언으로, '{...}'을 이른다. 郭慶藩과 王先謙이 잘 설명해 두었다. 成玄英은 辟/法也/謂機關之類也,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辟에 대해 毗赤反//司馬云/罔也, '{...}'라고 하였다. 盧文弨는 案當作毗亦反, '{...}'라고 하였다. 한편 郭慶藩은 辟疑爲繴之借字//爾雅/繴謂之罿/罿/罬也//罬謂之罦/罦/覆車也///郭璞曰/今之翻車也/有兩轅/中施罥以捕鳥///司馬曰辟罔也/誤//辟若訓罔/則下文死於罔罟爲贅矣//楚辭九章設張辟以娛君兮/王逸注/辟/法也/言讒人設張峻法以娛樂君[王念孫曰/楚辭九章以張辟連讀/非以設張連讀//張讀弧張之張//周官冥氏掌弧張/鄭注/弧張/罿罦之屬/所以扃絹禽獸]///頗費解義//墨子非儒篇/盜賊將作/若機辟將發也///鹽鐵論刑法篇曰/辟陷設而當其蹊/皆當作繴[楚辭哀時命/外迫脅於機臂兮/機臂與機辟同//玉篇王注以爲弩身/亦失之], '{...}'라고 하였다. 《說文解字》에서는 繴에 대해 繴謂之罿/罿謂之罬/罬謂之罦라고 되어 있다. 즉, 郭慶藩의 繴에 대한 설명은 《說文解字》에서 따 온 것이다. 《楚辭》 「九章」은 《楚辭》 「九章 惜誦」을 이른다. 판본에 따라 設張闢以娛君兮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周》 「官」은 아마 《周禮》 「秋官司寇」를 이르는 듯하다. 「秋官司寇」에는 冥氏/掌設弧張이라고 되어 있다. 《鹽鐵論》에는 「刑德」이 있고, 「刑法」은 없다. 위 문구가 나오는 편은 「刑德」이다. 王先謙은 辟/所以陷物//鹽鐵論刑法篇/辟陷設而當其蹊/與此同義//亦作臂///楚詞哀時命篇/外迫脅於機臂兮//機臂/即機辟也///玉篇王注/以爲弩身, '{...}'라고 했다. 《鹽鐵論》에는 「刑德」이 있고, 「刑法」은 없다. 위 문구가 나오는 편은 「刑德」이다. 辟陷은 '{...}'이다. 인용된 문구의 앞뒤 문맥을 살펴 보면, 대체로 '{...}'라는 내용이므로, 의미가 분명하다 하겠다. 臂는 '{...}'를 뜻하고, 機는 '{...}'이므로, 《楚辭》의 機臂는 사실 '{...}'을 뜻한다. 辟이 '{...}'을 포괄하는 말이라면, 機臂는 機辟의 일종일 것이다. 玉篇王注는 아마 《玉篇》에 대한 王逸의 주석이 아니라, 《玉篇》과, 《楚辭》에 대한 王逸의 주석을 뜻할 것이다. ◈ 死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罔罟는 체언으로, '{...}'이다. 罔과 罟는 모두 '{...}'이다. 成玄英은 罝罘, '{...}'이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徐音古,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子獨不見狸狌捕鼠之狀乎//卑伏其身/伺候傲慢之鼠//東西跳躑/不避高下之地//而中於機關之法/身死罔罟之中/皆以利惑其小/不謀大故也//亦猶擎跪曲拳/執持聖跡/僞情矯性/以要時利/前雖遂意/後必危亡/而商鞅蘇張即是其事//此何異乎捕鼠狸狌死於罔罟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7. 今夫斄牛/其大若垂天之雲//此能爲大矣/而不能執鼠, ◈ 今夫는 화제를 돌리는 말이다. '{...}'처럼 해석하면 타당하겠다. ◈ 斄牛는 {...}이다. 斄는 관형어로, '{...}'라는 말이고, 牛는 체언으로, '{...}'다. 즉, 斄牛는 '{...}'라는 말이다. 아마 티베트나 그 부근 지역에 서식하는 물소를 이르는 말이 아닐까 하다. 《說文解字》 「犛部」에는 斄/彊曲毛/可以箸起衣, '{...}'라고 되어 있다. 「犛部」에는 犛와 氂라는 글자도 있는데, 이에 대해 犛/西南夷長髦牛也, '{...}'라고 되어 있고, 또 氂/犛牛尾也, '{...}'라고 되어 있다. 西南夷는 지금의 雲南과 四川 서남부 지역을 가리킬 것이다. 《漢書》 「王莽傳 中」에는 好厚履高冠/以氂裝衣, '{...}'라는 말이 있는데, 顏師古는 毛之強曲者曰氂/以裝褚衣中/令其張起也//氂音力之反/字或作漦/音義同, '{...}'라고 하였다. 그런데 《說文解字注》에서 段玉裁는 《漢書》 본문과 顏師古의 주석에 있는 氂를 犛라고 인용해 두었다. 그리고, 按此犛皆斄之誤, '{...}'라고 하였다. 잘못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써 생각해 보건대, 斄, 氂, 犛는 아마 모두 통용되었던 글자였을 것이다. 본문에 대해 成玄英은 斄牛/猶旄牛也/出西南夷,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郭呂之反//徐李音來//又音離//司馬云/旄牛, '{...}'라고 하였다. ◈ 其大의 其는 斄牛를 가리킨다. ◈ 其大의 大는 체언으로 '{...}'를 이른다. ◈ 若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垂天之雲을 받는다. ◈ 垂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天은 체언으로, '{...}'이다. ◈ 天之雲의 之는 {...}다. ◈ 雲은 체언으로, '{...}'이다. 따라서 天之雲은 '{...}'이고, 垂天之雲은 '{...}'이 된다. 즉, 若垂天之雲은 '{...}', 곧 '{...}'라는 말이 된다. ◈ 此는 斄牛를 가리킨다. ◈ 此能의 能은 '{...}'는 말이다. 不能의 能도 그러하다. ◈ 爲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 爲大의 大는 체언으로 '{...}'을 뜻한다. ◈ 而不能의 而는 역접이다. '{...}'라고 해석된다. ◈ 執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鼠는 체언으로, '{...}'다. ◈◈ 成玄英은 其形甚大/山中遠望/如天際之雲//藪澤之中/逍遙養性/跳梁投鼠/不及野狸//亦猶莊子之言/不狎流俗/可以理國治身/且長且久者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此能爲大矣를 {...}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봐야 타당하다. [본문으로]
  8. 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 ◈ 今은 '{...}'이다. ◈ 子는 2인칭 대명사다. 惠子를 가리킨다. ◈ 有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大樹는 '{...}'다. {...}를 이른다. 大는 관형어로, '{...}'이다. 樹는 체언으로 '{...}'다. ◈ 患은 용언으로, '{...}'는 말이다. ◈ 其無用의 其는 大樹를 가리킨다. ◈ 無用은 명사구로, '{...}'이다.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用은 체언으로, '{...}'다. ◈ 何는 '{...}'라는 의문사다. ◈ 不樹의 樹는 용언으로, 식물을 '{...}'는 말이다. ◈ 不樹之의 之는 大樹를 가리킨다. 뒤의 於와 붙여서 之於를 '{...}'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면 樹의 목적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 於는 '{...}'다. 無何有之鄉과 廣莫之野를 받는다. ◈ 無何有는 '{...}'는 말이다. 何는 '{...}'이고, 有는 '{...}'는 말일 것이다. 따라서 何有는 '{...}'라는 말이 된다. 無는 부정어이므로, 無何有는 '{...}'는 말이 된다. 즉, '{...}'라는 뜻이다. 成玄英은 無何有/猶無有也, '{...}'라고 하였다. ◈ 無何有之鄉의 之는 {...}다. '{...}'처럼 해석된다. ◈ 鄉은 체언으로, '{...}'를 이른다. ◈ 廣莫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廣은 '{...}'는 말이다. 莫은 본래 '{...}'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大처럼 '{...}'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廣莫은 廣大, 즉 '{...}'는 말이 된다. 陸德明은 謂寂絕無爲之地也//簡文云/莫/大也,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莫에 대해 無, '{...}'라고 하였다. 成玄英은 莫의 기본적인 뜻을 취했고, 簡文帝는 莫을 大라고 보았다. 내가 簡文帝와 의견이 같은 근거는 이렇다. 앞에서 俞樾은 {...} 된다. 그래서 廣莫은 廣大가 된다. 廣大라고 하면 본문과 의미가 훨씬 잘 합치된다. ◈ 廣莫之野의 之는 {...}다. '{...}'처럼 해석된다. ◈ 野는 체언으로, '{...}'이다. ◈◈ 成玄英은 謂寬曠無人之處/不問何物/悉皆無有/故曰無何有之鄉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應帝王」에는 無何有之鄉/以處壙埌之野라고 하여, 의미는 {...} 말이다. [본문으로]
  9. 彷徨乎無爲其側/逍遙乎寢臥其下, ◈ 彷徨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는 의미에 가깝겠다. 彷과 徨은 모두 '{...}'는 말로, 특별한 목적지 없이 돌아 다닌다는 말이다. 成玄英은 彷徨/縱任之名//逍遙/自得之稱//亦是異言一致/互其文耳, '{...}'라고 하였다. 陸德明은 薄剛反/又音房, '{...}'라고 하였다. 그리고 彷徨에 대해서는 彷徨/猶翱翔也//崔本作方羊/簡文同//廣雅云/彷徉/徙倚也, '{...}'라고 하였다. 《崔譔本》의 方羊은 彷徉을 가차한 말일 것이다. 徬徉이라고 되어 있는 문헌도 있다. 《史記》 「吳王濞列傳」에는 彷徉天下, '{...}'라는 말이 나오는데, 판본에 따라 彷徉이 徬徉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다 의미는 같을 것이다. ◈ 彷徨乎의 乎는 아마 然처럼 {...}으로 바꾸어 주는 말일 것이다. 逍遙乎의 乎도 그렇다. 彷徨乎는 아마 '{...}'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論語》 「泰伯」에 蕩蕩乎民無能名焉/巍巍乎其有成功也, '{...}'라는 말이 있고, 《論語》 「八佾」에 郁郁乎文哉, '{...}'라는 말이 있다. ◈ 無는 부정어다. ◈ 爲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즉, 無爲는 '{...}'라는 말이 된다. ◈ 其側의 其는 大樹를 가리킨다. 其下의 其도 마찬가지다. ◈ 側은 체언으로, '{...}'이다. ◈ 逍遙는 용언으로, '{...}'라는 뜻이다. 나는 逍遙乎를 '{...}'라고 번역하였다. 彷徨에 대한 成玄英의 설을 보면, 逍遙/自得之稱, '{...}'라고 하였다. ◈ 寢臥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寢은 잠을 '{...}'는 말이고, 臥도 '{...}'는 말이다. ◈ 下는 체언으로, '{...}'다. ◈◈ 成玄英은 不材之木/枝葉茂盛/婆娑蔭映/蔽日來風/故行李經過/徘徊憩息/徙倚顧步/寢臥其下//亦猶莊子之言/無爲虛淡/可以逍遙適性/蔭庇蒼生也, '{...}'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0. 不夭斤斧/物無害者/無所可用/安所困苦哉, ◈ 不은 부정어다. ◈ 夭는 용언으로, '{...}'는 말이다. 《釋名》에서는 少壯而死曰夭, '{...}'라고 하였다. 少壯은 '{...}'는 말이다. 夭를 '{...}'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禮記》 「曲禮 上」에서 三十曰壯, '{...}'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 斤斧는 체언으로, '{...}'다. 여기서는 '{...}'이라고 해석해야 할 듯하다. 不夭斤斧는 不夭於斤斧라고 보고, '{...}'라고 해석하였다. 斤와 斧은 모두 '{...}'를 이른다. ◈ 物은 체언으로, '{...}'이다. {...}을 이른다. {...}을 모두 포괄하는 표현이다. ◈ 物無害者의 無는 '{...}'라는 말이다. 勿과 같다. ◈ 害는 용언으로, '{...}'는 뜻이다. ◈ 者는 也와 같다. 문장을 끝내는 조사다. 앞에 나온 卑身而伏/以候敖者의 者 부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無所可用의 無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 所可用은 '{...}'라는 말이다. 즉, 無所可用은 명사구로, '{...}'이 된다. 所는 '{...}'이다. 可用을 받는다. 可는 '{...}'라는 말이다. 用을 받는다. 用은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王先謙은 言無處可用之//人間世篇/是不材之木也/無所可用//又云/予求無所可用久矣///又山木篇/無所可用///文意並與此同, '{...}'라고 하였다. 「人間世」에서 인용된 是不材之木也/無所可用과 予求無所可用久矣는 匠石이 상수리 이야기 중 등장한다. 「山木」은 《外篇》에 속한다. 「山木」에서 인용된 無所可用은 莊子와 나무꾼의 대화에서 등장한다. ◈ 安은 의문사로, '{...}'다. ◈ 所困苦의 所는 '{...}'이라는 말이다. 困苦를 받는다. ◈ 困苦는 용언으로, '{...}'라는 말이다. 즉, 所困苦는 '{...}'이라고 해석될 것이다. 困은 '{...}', 苦 역시 '{...}'는 말이다. 郭慶藩은 闕誤引文本困苦作窮困, '{...}'라고 하였다. 困苦가 窮困은 모두 '{...}'는 뜻으로, 의미가 같다. 《闕誤》는 陳景元의 《莊子闕誤》다. ◈◈ 郭象은 夫小大之物/苟失其極/則利害之理均//用得其所/則物皆逍遙也, '{...}'라고 하였다. ◈◈ 成玄英은 擁腫不材/拳曲無取/匠人不顧/斤斧無加/夭折之災/何從而至/故得終其天年/盡其生理//無用之用/何所困苦哉//亦猶莊子之言/乖俗會道/可以攝衛/可以全眞/既不夭枉於世途/詎肯困苦於生分也, '{...}'라고 하였다. ◈◈ 王先謙은 又言狸狌之不得其死/斄牛之大而無用/不如樗樹之善全/以曉惠施//蓋惠施用世/莊子逃世/惠以莊言爲無用/不知莊之遊於無窮/所謂大知小知之異也, '{...}'라고 하였다. ◈◈ 孃破案 : 그러나 나는 狸狌에 대해서는 王先謙에 {...} 자기 자신을 잘 보전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며 惠子를 반박했던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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