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 9 - 왕제(재번역 예정)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安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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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 12월 22일 11시 29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請問爲政?曰:賢能不待次而舉,罷不能不待須而廢,元惡不待教而誅,中庸不待政而化。分未定也,則有昭繆。雖王公士大夫之子孫也,不能屬於禮義,則歸之庶人。雖庶人之子孫也,積文學,正身行,能屬於禮義,則歸之卿相士大夫。故姦言,姦說,姦事,姦能,遁逃。反側之民,職而教之,須而待之,勉之以慶賞,懲之以刑罰。安職則畜,不安職則棄。五疾,上收而養之,材而事之,官施而衣食之,兼覆無遺。才行反時者死無赦。夫是之謂天德,是王者之政也。
(누가) 정치에(爲政) 대해 묻는다고(請問, 잠깐 여쭘, 물어 봄) 하자. (그럼) 이렇게 대답해 줄 수 있겠다.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차례를(次) 기다리지(待) 말고(연공서열이나 격식을 따지지 않고) 등용해야(舉, 들어 올리다, 들추어 내다는 말인데, 맥락상 用과 같이 봄) 하며, 일을 감당할 수 없거나(罷, 왕선겸은 《순자》에서 賢과 대비해서 많이 쓰인다고 함) 재능이 없는 사람은 잠시도(須, 판본에 따라 傾으로 되어 있기도 함) 두고 보지 말고 쫓아내야 하며(廢), (또한) 아주 되도 않은 놈들은(元惡) 교화될 것을(教) 기다릴 것 없이(不待) 죽여 버려야 한다. (그러면) 보통 백성들은(中庸, 철학적 개념인 중용이 아니라, 맥락상 民을 붙여 中庸民으로, 즉 보통 사람으로 이해하는 게 좋겠음) 상벌에 기댈 것도 없이(不待政, 政은 제도, 상벌 등 백성들을 바로잡는 정치적 수단을 의미) 감화될(化) 것이다. (예와 의를 따를 수 있을지가) 아직 구분되지 않았을 때는 종묘에서 차례를 세우듯(昭繆인데, 繆은 穆으로 봄, 종묘에서 조상들을 배열할 때, 짝수대는 昭로, 홀수대는 穆이라고 부른다고 함) (명확히 분별)해야 한다. 설사 왕공과 사, 대부의 자손일지라도, 예와 의를 지킬(屬, 예속하다) 능력이 없으면 서인(庶人, 평민을 의미)으로 삼아야(歸, 되돌리다) 하고, (반면) 비록 서인의 자손일지라도 글과 학문을 (착실히) 배우고(積文學), 몸가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며, 예와 의를 지킬 능력이 있다면, 경, 상, 사, 대부로(卿相士大夫, 卿과 相은 재상, 士와 大夫는 중하급 귀족) 삼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기강을 세우면) 간사하게 지껄이는 놈들과, 간사한 설을 퍼트리는 놈들과, 일을 간교하게 하는 놈들과, 그 재주가 간악한 놈들은(姦言姦說姦事姦能, 순자는 姦을 붙여 부정적인 개념을 자주 만듬, 「유효」에서도 姦事와 姦道가 나왔고, 「비십이자」에서도 姦事와 姦心과 姦說이 나와, 三姦이라고 했음) (뿔뿔이 흩어져) 도망쳐 버릴 것이다.(遁逃)
(한편 위정자를 따라야 할지, 그러지 말아야 할지를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反側, 원래는 잠이 안 와 뒤척거리는 것을 의미, 여기서는 위정자를 따르지 않는 것으로 보거나, 그 입장이 일정치 않아 고민하고 있다고 보아야 함) 백성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직무를 맡겨(職) 교화하고(教), (교화될 때까지) 필요한 만큼(須) 기다려 주어야(待) 할 것이다. (그리고는 자기 직분에 힘쓰도록) 경상을 주어(慶賞, 기쁘게 주는 상) 격려할 것이요(勉), (자기 직분에 힘쓰지 않는 것에는) 형벌을 내려(刑罰) 벌을(懲) 줄 것이로다.(상벌을 줌으로써 사람을 다스린다는 것은 법가의 일반적인 관습이므로, 이 부분만 보면 순자의 입장은 법가와 아주 가까워 보임) (이렇게 하여 자기) 일을 잘 하면(安職) (그 백성을) 거둘 것이요(畜, 가축을 기른다는 말, 養과 같음, 여기서는 정치인으로서 백성을 받아들인다는 말), (자기) 일을 잘 하지 못하면 내처 버려야 한다.(棄)
오질(五疾,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난쟁이, 사지가 상한 자를 이름)을 앓는 이들은 왕이(上) 거두어 길러 주되, (각자의) 재능에 따라 일을 맡겨야 한다.(材而事之, 예를 들어 눈이 안 보이면 소리를 더 잘 들으므로, 그에 맞는 일을 맡기는 식) (오질 때문에 살아가기 힘들더라도 재능에 따라) 일을 맡기고, (자기 역할이 있는 사람으로서) 쓰이게 되는 것이니(官施, 왕선겸은 앞에서 왕이 거두었다는 말이 나왔기 때문에, 다시 관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봄, 그래서 官은 任으로, 施는 用으로 봄, 나도 왕선겸을 따랐으나, 官施를 원래 의미로 생각해도 의미상 큰 차이는 없음), 이로써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받을 것이로다. 이렇게 (자기 몫을 한다면 어떤 백성이든) 받아 들여(兼覆, 거듭 감싸다), 남는(遺) 자가(자기 재능을 발휘하지 못해 굶어 죽는 자가) 없게 해야 한다.
(다만 그) 재능과 행위가 지금과는(지금의 제도와는) 상충하는 놈들은(反時) 용서(赦) 없이 죽여 버려야 한다. 무릇, 이런 것을 보고 천덕(天德)이라고 하니, 이 모든 것이(是) (바로) 왕의 정치라고 할 수 있겠다.(王者之政, 맹자와 순자는 이상적인 통치자를 王者라고 표현함, 王者는 覇者에 대립되는 말이기도 함)
聽政之大分:以善至者待之以禮,以不善至者待之以刑。兩者分別,則賢不肖不雜,是非不亂。賢不肖不雜,則英傑至,是非不亂,則國家治。若是,名聲日聞,天下願,令行禁止,王者之事畢矣。凡聽:威嚴猛厲,而不好假道人,則下畏恐而不親,周閉而不竭。若是,則大事殆乎弛,小事殆乎遂。和解調通,好假道人,而無所凝止之,則姦言並至,嘗試之說鋒起。若是,則聽大事煩,是又傷之也。故法而不議,則法之所不至者必廢。職而不通,則職之所不及者必隊。故法而議,職而通,無隱謀,無遺善,而百事無過,非君子莫能。故公平者,職之衡也;中和者,聽之繩也。其有法者以法行,無法者以類舉,聽之盡也。偏黨而不經,聽之辟也。故有良法而亂者,有之矣,有君子而亂者,自古及今,未嘗聞也。傳曰:“治生乎君子,亂生乎小人。”此之謂也。
청정의(聽政, 정무를 보는 것, 정치 행위, 수렴청정이나 대리청정이라고 할 때의 청정과 같음) 큰 뜻에(大分)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선하기로 노력하는 사람들은(善至者, 至는 힘쓰다) 예로써 대하고, 못되기로 노력하는 놈들은 형벌로써(刑) 대한다. 이 두 부류를 구별할 수 있다면(兩者分別), 현명한 사람과 불초한 놈들이(賢不肖) (서로) 뒤섞이지 않을 것이니(不雜), (정치의) 시비가 어지러워지지 않을 것이다.(是非不亂) 현명한 사람과 불초한 놈들이 뒤섞이지 않으면 (또한) 영걸들이(英傑) (조정에) 모여들 것이요, (정치의) 시비가 어지러워지지 않으면 국가가 다스려질 것이다.(國家治) (정치를) 이와 같이 한다면(若是), (그) 명성은 환히 드러날 것이요(名聲日聞, 왕염손은 日가 白의 오기이고, 聞은 日 때문에 붙은 글자라고 함, 내용상 바로 뒤의 天下願와 댓구인데, 名聲日聞이면 天下願와 댓구가 부자연스러움, 따라서 나도 名聲白으로 봄), 천하 사람들에게 사모 받게(願)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영을 내리면 이루어질 것이요(令行), 금하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니(禁止), (비로소) 왕의 정치가(事) 이루어질(畢) 것이다.
무릇(凡) (어떤 사람이) 정사를 볼 때(聽은 聽政), (그 모습에는) 위엄이 넘치고(威嚴), (그 기세는) 맹렬하며(猛厲), 다른 사람을(人) 너그럽게 이끌어 주는 것은(假道, 道는 導, 너그럽게 이끌어 주는 모습)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백성들은(下, 아랫사람, 여기서는 백성) (위정자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여 (결국 서로) 가까워지지 못할 것이니(不親), (백성들은) 모두 마음을 감추어(周閉) (정치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드러내지(竭) 않게 될 것이다. (정치가 돌아가는 행태가) 이와 같다면, 큰 일들은 거의(殆) 엎어져 버리고 말 것이며(弛, 폐하다), 작은 일도 대개(殆) 늦춰지고 말 것이다.(遂)
(이번에는 반대로) 지나치게 유약하고(和解調通, 네 글자 모두 화해, 소통, 조화를 의미함, 威嚴, 猛厲와 대비되어 오히려 유순하다는 말), 남을 너그럽게 이끌어 주기를 좋아하며, (일이 잘못 돌아가도) 제지할 줄을(凝止, 두 글자 모두 그치다, 멈추다) 모른다고 하자.(너무 유약하여 오히려 남의 말에 휘둘리는 상황) 그렇다면 (위정자를 흔들려 하는) 간사한 말들이(姦言) 한꺼번에(並) 일어날 것이며(至), (위정자를 만만하게 보고) 떠 보려는 말들은(嘗試之說, 시험삼아 해 보는 말, 여기서는 위정자를 만만하게 보고 떠 보는 말) 벌떼처럼(鋒은 蜂) 일어날 것이다. (정치가 돌아가는 행태가) 이와 같다면, (위정자가) 신경 써서 처리해야 할 일이(聽大事) 번잡하게 될 것이므로, 이 방법 또한(是又) (정사를 돌보기에) 해롭다(傷) 하겠다.(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쳐낼 것은 쳐내야 하는데, 모두의 말을 다 들어 주고, 이뤄 주려 하니 대의를 잃고 만다는 말)
무릇(故는 夫) 법을 정하더라도(法), (법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議) 않으면,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들이 분명 생길 것이고, 그런 곳들에 대한 청정)은 반드시 실패할(廢)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직무를 맡았다 하더라도, (직무를 충분히) 이해하지(通) 못했다면, 직무가 미치지 못하는 곳(들이 분명 생길 것이고, 그런 것들에 대한 행정)은 분명 늦어지고 말(隊는 遂)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정할 때는 (충분히) 고민해야 하고, 직무를 맡을 때는 (충분히 직무에 대해) 이해해야 하며, (백성들을) 몰래 기만해서도 안 되고(無隱謀), (백성들에게 베풀지 못한) 선이 남아 있어도 안 된다.(無遺善) 그러면(而) 백 가지 일을 하더라도 실수( 한 번 )하지 않을 것이니(百事無過), 이렇게 할(정치를 펼) 수 있을 사람은 군자가 아니면 없을 것이로다.
따라서 공평함은(公平) 정무를(職은 聽의 오기로 보임) 볼 때의 저울(衡)이라고 하고, 중화는(中和, 중용과 조화로 보임) 직무를(聽은 職의 오기로 보임) 볼 때의 먹줄(繩)이라고 하는 것이다.(衡과 繩은 저울과 먹줄로, 모두 무언가를 계량, 판단하기 위한 도구임, 정무와 직무를 볼 때 기준으로 삼을 만한 가치라는 말) 그래서(其) (적당한) 법이 있을 때는 법을 집행해야 하고(法行), (적절한) 법이 없을 때는 비슷한 경우를 들어(類舉) 처리해야 하니, (바로 이것을) 정치의 진수라고 하겠다.(聽之盡也) (그런데 사람들이) 파당을 이루고, 법도도 없을 때가 있다.(不經, 經은 法) (이것은) 정치가 편파적이었기(辟은 僻)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에) 좋은 법이(良法) 있어도 (나라가) 혼란스러운 경우는 있으나, (나라에) 군자가 있는데도 (나라가) 어지럽다는 말은, 예로부터 지금까지도(自古及今)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 (이에 대해) 전해 내려 오는(傳) 말이 있다.
"군자가 치세를(治) 낳고(生), 소인은 난세를(亂) 낳는다.(生)"
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分均則不偏,埶齊則不壹,眾齊則不使。有天有地,而上下有差;明王始立,而處國有制。夫兩貴之不能相事,兩賤之不能相使,是天數也。埶位齊,而欲惡同,物不能澹則必爭;爭則必亂,亂則窮矣。先王惡其亂也,故制禮義以分之,使有貧富貴賤之等,足以相兼臨者,是養天下之本也。書曰:“維齊非齊。”此之謂也。馬駭輿,則君子不安輿;庶人駭政,則君子不安位。
(모두의) 신분이(分) 같으면(均) (힘이 한 쪽에) 치우치지 않게 된다.(不偏, 여기 대해서는 이설이 많은데, 왕염손은 偏을 徧이라 보아서 재물이나 물자가 두루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고, 우창, 왕천해, 장각은 辨으로 보아 다스릴 수 없다, 통솔할 수 없다는 식으로 봄, 다만 이 글자 하나가 뒤의 내용 흐름을 모두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으며, 나는 순자가 여기서 주제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주제에 대한 은유를 보였다고 생각함, 이에 맥락에 충분히 타당하다고 판단해 원래 偏으로 봄) (마찬가지로) 세력이(埶은 勢) (서로) 같으면(齊) (그 중 누군가가) 하나로 합칠 수 없는 법이요, 사람들(의 힘)이(眾) (서로) 같으면 (서로가 서로를) 부릴(使) 수 없는 법이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는 것처럼(有天有地), 위와 아래가(上下) (이처럼 서로) 달랐다. 명철한 왕이 처음 (세상에) 나타났을(立) 때부터 나라에는 (신분에 관한) 제도가 있었다. 무릇, 양측이 모두 귀하면 (서로가) 서로를 섬길(事) 수 없는 법이요, 양측이 모두 천하면 (서로가) 서로를 부릴 수 없는 법이니, 이것은 천명이다.(天數, 숙명, 운명, 천명)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권세와 지위가 같고, 원하는 바와(欲) 싫어하는 것조차(惡) 같다면, 물자는(物) 넉넉할 수(澹) 없을 것이니, 반드시 싸움이 터질 것이고, 싸움이 터지면 분명 난(亂)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난이 일어나면 (모두의 처지가) 곤궁해지고(窮) 말 것이다. 선왕들은(先王, 고대의 성왕들) 이런 문제 때문에 생기는(其) 난을 싫어했기 때문에, 예와 의로써 (사람들의) 신분을(分) 만들었다.(制) (그리하여 선왕들은) 빈부귀천의 등위(等)가 있게 하여 (백성들의 힘에 서로 차이가 있게 하였으니 백성들이) 서로서로 다스릴 수 있을(兼臨, 《한서》 「예악지」에도 나오는데, 안사고는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감싸 주는 것이라 함, 여기서는 다스린다는 말로 봄) 만하게(足) 하였다. 이것이 (바로) 천하의 근본(된 이치)이로다. 《서》에 이런 말이 있다.
"오직(維는 惟) 공평하지 않은 데에서(非齊) 공평함이 나온다."(《서》의 「여형」에 나오는 말, 원래 내용은 주나라의 목왕이 여후를 법관인 사구에 임명하고, 여후와 서로 형벌에 대해 대화하는 것, 원문에서 齊는 죄 없이 바르다는 의미로 쓰였고, 따라서 그 의미도 '법의 요체는 오직 바르지 않은 사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함, 순자는 齊를 공평하다는 의미로 사용하여 신분에 대한 자기 의견에 끼워 맞췄음)
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馬駭輿,則莫若靜之;庶人駭政,則莫若惠之。選賢良,舉篤敬,興孝弟,收孤寡,補貧窮。如是,則庶人安政矣。庶人安政,然後君子安位。傳曰:“君者、舟也,庶人者、水也;水則載舟,水則覆舟。”此之謂也。故君人者,欲安、則莫若平政愛民矣;欲榮、則莫若隆禮敬士矣;欲立功名、則莫若尚賢使能矣。-是人君之大節也。三節者當,則其餘莫不當矣。三節者不當,則其餘雖曲當,猶將無益也。孔子曰:“大節是也,小節是也,上君也;大節是也,小節一出焉,一入焉,中君也;大節非也,小節雖是也,吾無觀其餘矣。”
말이 수레를 끌다 놀라면(駭) 수레를 타고 있는 군자가 편안할 수 없는 법이다. (이처럼) 서인들이(庶人, 평민) (위정자의) 정치에 놀라면 직무를 맡고 있는(位) 군자도 편안할 수 없을 것이다. 말이 수레를 끌다 놀랐을 때는 말을(之) 진정시키는 것 만한(靜) 방법이 없을 것이고, 서인들이 정치에 놀랐을 때는 (위정자가 서인들에게) 은혜를 배푸는 것 만한(惠)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은혜를 배푼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현량한 이를(賢良) 가려내고(選), 독경한 이를(篤敬, 성실하고 스스로 절제할 만한 것) 추천한다.(舉) 효제를(孝弟는 孝悌, 윗사람과 아랫사람에 대한 사랑) 일으키고(興), 고아와 과부를(孤寡) 거두어 주며(收), 가난하고 궁벽한 이들을(貧窮) 도와 준다.(補) 이와 같이 하면(如是) 서인들은 정치에 만족할(安) 것이니, 서인들이 정치에 만족하면 직무를 맡고 있는 군자도 편안할 수 있을 것이로다. (이에 대해) 전하는 말이 있다.
"군주는(君) 배요, 서인은 물이로다. 물이 배를 떠받들(載) 수도 있고, 물이 배를 뒤엎을(覆) 수도 있도다."
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따라서 군주된 사람이 (스스로) 편안하고자 한다면, 정사를 공평하게 보고(平政), 백성을 사랑하는 것 만한 방법이 없으며, (군주된 사람이 스스로) 영예롭고자 한다면, 예를 받들고(隆禮), 선비를 공경하는 것(敬士) 만한 방법이 없다. (또한 군주된 사람이 스스로) 공적과 명성을 떨치고자(立功名) 한다면, 현인을 숭상하고(尚賢), 재능 있는 이를 (잘) 쓰는(使) 것 만한 방법이 없다. 이 것들이야말로(是) 군주가 지켜야 할 대절이라고(大節, 節은 원칙으로 봄, 큰 원칙) 할 수 있겠다. 삼절을(三節, 상기한 세 가지 원칙) 마땅히 지킨다면(當) 다른 (모든) 일도(其餘) 이루어지지 않는(不當)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삼절을 마땅히 지키지 못한다면, 설사(雖) 다른 (모든) 일을(其餘) 오히려(曲은 由의 오기로 보임, 오히려) 이뤄낸다(當) 하더라도, 다만(猶) 장차(將) (멀리 본다면) 무익하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절도(大節, 큰 원칙) 지키고, 소절도(小節, 작은 원칙) 지킨다. 좋은 군주로다.(上君) 대절은 지키는데 소절은 잘 지키지 못하니(小節 다음에 非也가 빠진 것으로 보임, 非也이 들어 있는 판본이 있음), 한 번 어기기도 하고, 한 번 지키기도 한다.(一出焉一入焉) 보통 군주로다.(中君) (하지만) 대절을 지키지 못했다면, 설사(雖) 소절을 지켰다 한들 나는 더 지켜 보지(觀) 않으련다."
成侯、嗣公聚斂計數之君也,未及取民也。子產取民者也,未及爲政也。管仲爲政者也,未及修禮也。故修禮者王,爲政者彊,取民者安,聚斂者亡。故王者富民,霸者富士,僅存之國富大夫,亡國富筐篋,實府庫。筐篋已富,府庫已實,而百姓貧:夫是之謂上溢而下漏。入不可以守,出不可以戰,則傾覆滅亡可立而待也。故我聚之以亡,敵得之以彊。聚斂者,召寇、肥敵、亡國、危身之道也,故明君不蹈也。
성후와 사공은(둘 다 衛나라 제후로, 성후가 사공의 할아버지임) (모두) 백성들에게 삥을 뜯고(聚斂) 자기 잇속이나 챙기는(計數, 계산하고 수를 세는 것, 여기선 자기 잇속을 계산하는 것) 군주였으니, (이들의 정치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데(取民, 양경은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고 보았고, 종태는 取을 聚로 보아 백성들이 모인다고 봄) 이르지는 못했다.(未及) 자산은(정나라의 재상)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으나, 정치를 (바르게) 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관중은 정치를 (바르게) 폈으나, (백성들에게) 예를 베푸는 데까지(修禮, 백성들을 예로써 교화시키는 것을 이름) 이르지 못했다. 무릇(故) 예를 배풀 수 있으면 왕자가 되고(王, 일반적인 왕이 아니라 유학에서 이상적으로 정치를 펴는 사람으로써의 왕인 듯), 정치를 (바르게) 펴는 자는 (나라를) 강하게 만들 것이며(彊), 백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자는 (나라를) 안정시킬 것이다.(安) (하지만) 백성들에게 삥이나 뜯는 놈들은 (나라를) 망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왕자는 백성들을 만족시키고(富), 패자는(覇) 사(士, 하급 관리, 여기서는 하급 지휘관 같은 군대 종사자를 이름)를 배불릴(富) 것이며, (국체만)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僅存之國, 僅은 겨우겨우) 대부(大夫, 중급 귀족, 자기 영지가 있는 봉건 귀족)의 배만 불려 줄 것이다.(富) (그리고) 망할 만한 나라는(亡國) (군주의) 광협에만(筐篋, 장방형 나무 상자, 여기서는 왕의 개인 금고를 의미) 재물이 모이며(富), 부고(府庫, 국가의 세금 창고)만 가득 차게 된다. (만약) 광협에는 재물이 이미 가득하고, 부고도 이미 (세금으로) 가득 차 있는데, (오히려) 백성들은 가난하다고 하자. 무릇, 이런 것을 두고 (각각) 상일과 하루라고 한다.(上溢과 下漏인데, 溢은 넘치는 것, 漏는 물 같은 것이 세는 것을 의미, 부유한 윗사람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아랫사람은 더욱 가난해짐을 의미함)
(상일과 하루가 만연한 나라는) 안으로는(入) (나라를) 지킬 수가 없고, 밖으로는(出) (외적에) 맞서 싸울 수가 없으니, (그 나라가) 뒤집어지고(傾覆, 뒤집어져 망하는 것), 멸망하리라는 것을(滅亡) 당장에라도(立, 즉시) 기대해(待) 볼 만하다. 무릇(故) 자신의(我) 취렴(聚, 백성 삥 뜯는 것) 때문에 (그 나라는) 망해 버리고, 적들만(敵) (삥 뜯은 재물을) 얻음으로써 강해지고 만다. (이렇듯) 백성을 삥 뜯음으로써(聚斂) (적의) 노략질만(寇) 초래하고(召), (오히려) 적을 부유하게 만든다.(肥) (이것은 결국) 나라는 망하고, 자신은(身) 위태롭게(危) 만드는 길이다. 그러므로 명군이라면 (이런 짓을) 따라 하지(蹈, 따라 하는 것) 않아야 한다.
王奪之人,霸奪之與,彊奪之地。奪之人者臣諸侯,奪之與者友諸侯,奪之地者敵諸侯。臣諸侯者王,友諸侯者霸,敵諸侯者危。用彊者:人之城守,人之出戰,而我以力勝之也,則傷人之民必甚矣;傷人之民甚,則人之民必惡我甚矣;人之民惡我甚,則日欲與我鬥。人之城守,人之出戰,而我以力勝之,則傷吾民必甚矣;傷吾民甚,則吾民之惡我必甚矣;吾民之惡我甚,則日不欲爲我鬥。人之民日欲與我鬥,吾民日不欲爲我鬥,是彊者之所以反弱也。地來而民去,累多而功少,雖守者益,所以守者損,是以大者之所以反削也。諸侯莫不懷交接怨,而不忘其敵,伺彊大之間,承彊大之敝,此彊大之殆時也。知彊大者不務彊也,慮以王命,全其力,凝其德。力全則諸侯不能弱也,德凝則諸侯不能削也,天下無王霸主,則常勝矣:是知彊道者也。彼霸者則不然:辟田野,實倉廩,便備用,案謹募選閱材伎之士,然後漸慶賞以先之,嚴刑罰以糾之。存亡繼絕,衛弱禁暴,而無兼并之心,則諸侯親之矣。修友敵之道,以敬接諸侯,則諸侯說之矣。所以親之者,以不并也;并之見,則諸侯疏矣。所以說之者,以友敵也;臣之見,則諸侯離矣。故明其不并之行,信其友敵之道,天下無王霸主,則常勝矣。是知霸道者也。閔王毀於五國,桓公劫於魯莊,無它故焉,非其道而慮之以王也。彼王者不然:仁眇天下,義眇天下,威眇天下。仁眇天下,故天下莫不親也;義眇天下,故天下莫不貴也;威眇天下,故天下莫敢敵也。以不敵之威,輔服人之道,故不戰而勝,不攻而得,甲兵不勞而天下服,是知王道者也。知此三具者,欲王而王,欲霸而霸,欲彊而彊矣。
왕(王, 覇의 반대)이 얻고자 하는 것은(奪, 빼앗다, 쟁취하다는 말이므로, 얻기를 바라는 목표를 의미) 백성이요(人, 양경은 賢人으로 보았고, 구보애, 양계웅, 왕천해는 人心으로 봄, 유가 정치에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백성을 잘 다스려 백성이 잘 살게 하는 것이므로, 백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음) 패국(覇)이 얻고자 하는 것은 외교적 성공이며(與, 더불어 잘 어울림), 강국(彊)이 얻고자 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땅이다. 백성을 얻고자 하면 제후들을 신하로 부릴 것이요, 외교를 얻고자 하면 제후들을 벗으로 대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땅을 얻고자 하면 제후들을 적으로 여길 것이다. (이에) 제후들을 신하로 부린다면 왕이라 하겠고, 제후들을 벗으로 대한다면 패라고 할 것이며, 제후들을 적으로 여길 나라는 위태로운 나라라고(危) 할 수 있을 것이다.
(강국을 왜 위태롭다고 할까. 상술한 강국처럼) 무력을(彊) (곧 잘) 쓰는 나라를 생각해 보자. 다른 나라들은(人, 맥락상 국가로 봄) (때에 따라) 성을 지키기도 하고, 나와 싸우기도(出戰) 하는데(다른 나라들이 이미 방어 수단을 갖추고 있음에도), (무력을 쓰는 나라들은) 그럼에도(而) 힘으로서 다른 나라들을(之) 이기려 하니, 그런 즉(則)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백성들은 크게(甚) 상할(傷) 것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백성들이 크게 상하면, (그) 나라의 백성들은 우리를(我, 무력을 써서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강국을 의미함) 아주 미워하게 될 것이다. 상대 나라의 백성들이 우리를(我) 미워하게 되면, (그 나라 백성들은) 날이 갈수록(日) 우리와(我) 싸우려 들 것이다.
(이번엔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다른 나라들은 (때에 따라) 성을 지키기도 하고, 나와 싸우기도 하는데, 우리나라가(我) 힘으로써 다른 나라들을 이기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과정에서) 우리 나라의(吾) 백성들은 크게 상하고 말 것이다. 우리 백성이 상하면, 우리 백성들은(吾民) 우리 나라를(我) 분명 크게 미워하게 될 것이다. 우리 백성들이 우리 나라를 미워하게 된다면, (우리 백성들은 다른 나라를 힘으로써 이기기 위한) 우리 나라의 전쟁을 날이 갈수록 돕지 않으려 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이므로 결국) 다른 나라의 백성들은 날이 갈수록 우리 나라와 싸우고 싶어하게 되고, 우리 백성들도 날이 갈수록 우리 나라의 전쟁을 돕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강국이 (힘 써 전쟁을 벌이다가) 도리어(反) 약해지는 까닭이다.
(전쟁의 결과로) 땅은 얻었으나(地來) 백성(의 마음)은 잃게 되었고(民去), 고생은 많이 했으나(累多) 공로는 (오히려) 적게 되었다.(功少) (그러니 힘만 믿고 깝치면) 비록 (새로) 손에 넣은 것이 늘어났다 한들, (오히려) 그 때문에 (원래) 갖고 있던 것은 줄어들고 마는 것이다.(雖守者益所以守者損, 양경은 守를 지키다로 보고 앞의 守者를 토지, 뒤의 守者를 토지를 지키는 사람, 즉 백성으로 보았는데, 그러면 중간의 所以가 의미하는 인과 관계가 글의 의미에 들어지 않음, 나는 守를 손에 넣다, 혹은 소유한 것으로 보고, 앞의 문장과 함께 보았음, 그러면 앞의 守者는 地와 累가 되고, 뒤의 守者는 民과 功이 됨, 전쟁을 일으켜서 땅을 얻고, 고생도 했지만, 그 전쟁 때문에 백성의 마음을 잃고, 공로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으므로, 이렇게 볼 때 문맥이 가장 타당하며, 의미가 누락되는 글자도 없게 됨) 이것이야말로 큰 나라가(大者) 오히려(反) 약해지고마는(削) 까닭이다.
(이런 강국에게 힘으로 예속된) 제후들은 (겉으로는 강국과) 교류하지만 (강국에 대한) 두려움은 이어지지(懷交接怨, 설이 여럿 있으나 학의행의 설을 따름, 接을 續로, 즉 이어진다는 의미로 보아, 懷交은 교제하고 교류한다는 말로, 接怨은 두려움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말로 봄) 않음이 없으니, 자신들의(其) 적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런 나라들은) 강대국(의 국력)에(彊大) 틈이 생기기를(間) 엿보다가(伺), 강대국이 황폐해지면(敝) (그 때를) 받(아 강대국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대국이 위태로워질 때(殆時)로다. (이런 까닭에 상술한) 강도에(彊大인데 大를 道의 오기로 보아 彊道로 봄, 문단 끝에 彊道가 나오기도 함, 뒤의 맥락을 볼 때 王道나 覇道에 대응하는 말로 썼다고 할 수 있음) 대해 (잘) 아는 국가는(者) (오히려 더) 강해지는 데는 힘쓰지 않고, 천자의(王) 명령을 받들어(慮) 그 힘을 보전하고(全), 그 덕을 쌓는다.(凝, 엉기다, 모이다) (강국의) 힘이 온전하면 (다른) 제후들이 (강국을 군사적으로) 약하게 만들 수 없고, (강국이) 덕을 쌓으면 (다른) 제후들이 (강자에게) 깝칠(削, 영토를 깎는다고 보기도 함)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이미) 천하에 왕업이나 패업을 이룬 나라가(王霸主, 옛 周나 秦처럼,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국가를 의미함, 양경은 主가 잘못 들어간 게 아닌가 했고, 도홍경, 안적신, 왕천해 등은 강국이 이미 왕의 나라이므로 王이 잘못 들어갔다고 보았는데, 강국을 설명한 뒤에 패자를 설명하고, 다시 그 뒤엔 왕자를 설명하는 것으로 볼 때, 강국은 패자, 왕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인 것임, 따라서 도홍경 등의 의견은 틀렸음, 나는 양경이 타당하다고 봄) 없는 한, (강국은) 항상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게(勝) 될 것이다. 이런 나라가 (바로) 강도를(彊道) 아는 나라이다.
(강자가 저런 것에 비해) 저 패자들은 그렇지 않다.(강국과는 다르다는 말) 밭과 들을 일구고(辟, 농사 짓는다는 의미가 있음), (나라의) 창름을(倉廩, 곳간) 채우며, 비용을(備用, 쓰는 물건들, 기물) 갖추어 둔다.(便은 辦, 정비하다, 준비하다) (또한 인재를) 신중하게(謹) 모으고(募) 가려내니(選), 재능과 재간이 있는 사(士, 하급 관리, 하급 무관, 선비)들이 (패자에게) 모여 든다.(閱) 그런 이후에 (일을 잘하면) 점차(漸) 포상을 내려(慶賞, 상을 주다) 기용한 인재들을(之) 이끌어 나가고(先), (일을 못하면) 형벌을 엄하게 하여 기용한 인재들을 바로잡는다.(糾, 바로잡다, 협박하다)
(패자는) 망해 가는 나라를 구하고(存亡), (명맥이) 끊어진 나라를 (다시) 이어 주며(繼絕), 약한 나라는 보호하고(衛弱), 난폭한 나라는 (깽판을 치지 못하게) 막는다.(禁暴) 그리하였는데도(而) (패자에게 타국을) 겸병할(兼并은 兼倂, 정복하다) 마음이 엿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제후들도 패자를(之) 친근하게 여길 것이다. (타국과) 대등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友敵, 남과 잘 지내는 것, 대등하게 친구로 사귀는 것) 도리를 닦아, (다른) 제후들을 공경으로써 대하면(敬接), (다른) 제후들도 패자(의 태도)에(之) 기뻐할(說은 悅) 것이다. (그런데 이 사례에서 제후들이) 패자를(之) 친근하게 여기는 이유는 (패자가 제후들을) 겸병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니, (패자가 제후들을) 겸병하려 하는 듯 보인다면(見), 제후들은 (패자와) 멀어지고(疏)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후들이) 패자(의 태도)에(之) 기뻐하는 까닭은 (패자가 자신들과) 대등하게 잘 지내려고 했기 때문이니, (패자가 제후들을 자신의) 휘하로 대하려(臣) 하는 듯 보인다면, 제후들은 (패자와) 멀어지고(離) 말 것이다. 따라서 (패자는 다른 나라를) 겸병하지 않겠다는 행위를 분명히(明) 해야 하고, (자신이 다른 나라와) 대등하게 잘 지내려 한다는 것을 (다른 나라들이) 믿게끔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이미) 천하에 왕업이나 패업을 이룬 나라가(王霸主) 없는 한, (패자는) 항상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게(勝) 될 것이다. 이런 나라가 (바로) 패도를(覇道) 아는 나라이다.
(하지만 옛날 강자와 패자였던 자들의 예를 생각해 보자. 제나라의) 민왕은 다섯 나라에게 망해(毀, 헐다, 부수다) 버렸고(민왕 때 제나라는 온 중국에 대고 깝치다가 연, 秦, 魏, 한, 조 5개국 연합군에 철저히 짓밟힘, 민왕은 맥락상 강국의 예), (제나라의) 환공은 노나라의 장공에게 겁박당했는데(제나라와 노나라가 전후 처리를 두고 연 회담에서 노나라의 조말이 환공을 칼로 위협해 노나라의 땅을 보전한 사건, 환공은 맥락상 패국의 예), (이렇게 된 것은) 다른(它) 이유는(故) 없고, (다만) 민왕과 환공의 법도가(其道) (왕도가) 아님에도 (천하에) 왕도로써(王) 생각되었으면(慮) 했기 때문이다.(패자들의 정치 행위는 타당한 듯 보이지만, 민왕과 환공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왕자의 정치 행위와 비견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
(강자와 패자가 저런 것에 비해) 저 왕자는(王者) 그렇지 않다. (왕자의) 인은(仁) 세상이 우러를 만한(眇, 학의행은 眇를 妙의 옛 글자로 보았고, 왕염손은 高遠하다고 봄, 표현은 다르지만 높고 훌륭하다는 말임) 것이고, (왕자의) 의는(義) 천하가 우러를 만한 것이며, 왕자의 위엄도(威) 천하가 우러를 만한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이렇다.) 천하가 (왕자의) 인을 우러러 보니 천하에 (왕자를) 가까이(親) 여기지 않는 자가 없고, 천하가 (왕자의) 의를 우러러 보니, 천하에 (왕자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으며, (마찬가지로) 천하가 (왕자의) 위엄을 우러러 보니, 천하에 (왕자에) 대적할 만한 자가 없도다. (왕자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위엄으로,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도리를(服人之道) 펴니(輔, 돕다), 그리하여 (왕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며, 공격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얻는다. 갑병들을(甲兵, 정예병) 고생시키지 않고 천하를 복종시키고야 마는 것이다. 이런 나라가 (바로) 왕도를(王道) 아는 나라로다.
이 삼구(三具, 세 가지 조건, 상기한 강, 패, 왕에 대한 기술을 의미)를 아는 자는, 왕자가 되고 싶으면 왕자가 될 것이고, 패자가 되고 싶으면 패자가 될 것이며, 강자가 되고 싶으면 강자가 될 것이다.
王者之人:飾動以禮義,聽斷以類,明振毫末,舉措應變而不窮,夫是之謂有原。是王者之人也。王者之制:道不過三代,法不二後王;道過三代謂之蕩,法二後王謂之不雅。衣服有制,宮室有度,人徒有數,喪祭械用皆有等宜。聲、則非雅聲者舉廢,色、則凡非舊文者舉息,械用,則凡非舊器者舉毀,夫是之謂復古,是王者之制也。王者之論:無德不貴,無能不官,無功不賞,無罪不罰。朝無幸位,民無幸生。尚賢使能,而等位不遺;析愿禁悍,而刑罰不過。百姓曉然皆知夫爲善於家,而取賞於朝也;爲不善於幽,而蒙刑於顯也。夫是之謂定論。是王者之論也。王者之法:等賦、政事、財萬物,所以養萬民也。田野什一,關市幾而不征,山林澤梁,以時禁發而不稅。相地而衰政。理道之遠近而致貢。通流財物粟米,無有滯留,使相歸移也,四海之內若一家。故近者不隱其能,遠者不疾其勞,無幽閒隱僻之國,莫不趨使而安樂之。夫是之爲人師。是王者之法也。
왕자의 됨됨이는(人) 이러해야 한다. (그) 행동은(動) 예와 의로써 가다듬어야 하고(飾는 飭, 경계하다), (송사는) 법리에(類는 法) 따라 심리해야 하며(聽斷, 송사를 심리하는 것을 이름), 털 끝 만한 잘못이라도(毫末, 털 끝, 맥락상 잘못된 일이라고 봄) 분명하게 바로잡아야 하고(明振),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에 대한) 조치와 대응이(舉措應變, 舉措와 應變 모두 사건에 대한 대응을 이름) 막혀서는 안 된다.(不窮) 대저, 이런 것을 보고 유원(有原, 原은 本이므로, 근본이 있다, 근원이 있다는 말, 여기 나열된 왕자의 행동이나 일을 하는 방식이 믿고 의지할 만하다는 말)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왕자의(왕자가 갖춰야 할) 사람됨이로다.
왕자의(왕자가 지켜야 할) 규범은(制) 이러해야 한다. (그) 도리는 삼대를(三代, 하, 은, 주) 넘지 말아야 하고, (그) 법도는 후왕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不二, 둘이 아니다, 같다) 도리가 삼대를 넘는 것을 탕(蕩, 방종, 허황)이라고 하고, 법도가 후왕과 다른 것을 불아(不雅, 바르지 않음)라고 한다.(삼대는 고대의 정치를, 후왕은 '현대'의 정치를 의미함, 삼대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삼대 보다 이전으로 가면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멋대로 지껄이는 헛소리라는 것이고, 후왕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현실에 본 받을 만한 정치가 있다면 마땅히 그 정치를 본 받아야 한다는 말) 의복에도 (각자가 지켜야 할) 법도가(制) 있고, 집에도(宮室) (각자에 맞는) 규격이(度) 있으며, 서민들에게도(人徒) (그에 맞는) 예법이(數) 있으니, 상례나 제례에(喪祭) 쓰이는 계용(械用, 기물, 쓰이는 물건)에도 신분에 따라(等) 법도가(宜는 儀, 법도) (따로) 있다.(갑자기 이 문장에서 신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마 맥락상 신분에 따른 기강을 세우는 일도 왕자가 해야 할 규범에 포함된다고 순자가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듯) 소리는(聲), 바른 소리가(雅聲) 아닌 것은 낱낱이(舉) 없애 버려야 하고, 그림은(色, 그림을 의미하는 듯), 구문이(舊文, 文이 무늬이므로, 전통적인 그림으로 이해하면 될 듯) 아니면 전부 없애(息은 滅) 버려야 하며, 계용은(械用, 기물) 구기(舊器, 구문처럼 전통적인 기물로 이해함)가 아니면 모두 부숴(毀) 버려야 한다. 무릇, 이런 것을 보고 복고(復古, 옛날로 되돌림, 雅聲, 舊文, 舊器를 이르는데, 왜 순자가 갑자기 복고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지 의뭉스러움, 이런 입장은 후왕에 대한 순자의 기술과는 배치되기 때문)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왕자의(왕자가 지켜야 할) 규범이로다.
왕자의 정치는(論, 양경은 상벌에 대한 설을 論이라 했고, 왕선겸은 論을 倫으로 보아 등급으로 보아야 한다고 함, 하지만 맥락상 정치라고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겠음) 이러해야 한다. 덕이 없으면 귀하게 만들어 주지 말아야 하고, 능력이 없으면 임용해 주지 말아야 한다. (또한) 공로가 없으면 상을 주지 말아야 하고, 죄가 없으면 벌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조정에는 운빨로 직위를 유지하는 자가 없게 될 것이요(朝無幸位), 백성들 중에는 요행만으로 명맥을 잇는 자가 없게 될 것이다.(民無幸生, 일은 안 하고 복지만으로 사는 사람을 비판하는 말, 《장자 내편》 「인간세」의 支離疏처럼, 당대에도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 같음) 현명한 사람을 숭상하고(尚), 능력 있는 사람을 쓰되(使), 능력에 따라 직위를 주기를(等位, 等은 보통 신분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맥락상 능력의 차등으로 봄) 빠뜨리지 말아야 하고(不遺, 遺는 남기다, 빠뜨리다), 약아 빠진 놈들을(愿은 傆의 오기로 봄) 막고(析은 折의 오기로 봄), 사나운 놈들을(悍) 억눌러야 하되(禁), (그) 형벌은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집 안에서(잘 안 보이는 곳에서) 좋은 일을(善) 해도 조정에서 상을 받을 것이며, 외진 곳에서(幽) 좋지 않은 일을(不善, 악) 해도 (전말이) 드러나(顯) 형벌을 받을 것(蒙刑, 蒙은 받다)이라는 점을 백성들 모두가(皆) 분명히(曉然, 환하게 밝혀진 모양) 알게 될 것이다. 대저, 이런 것을 보고 정론(定論, 바로잡힌 정치)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왕자의 정치로다.
왕자의 법(法)은 이러해야 한다. 세금은 균등하게 메기고(等賦), 일은 바르게 처리하여(政事, 政은 正), (이로써) 만물을 바로잡으니(財萬物, 財는 裁로, 마름질을 의미), 만백성을(萬民) 길러내기 위함이로다. 논밭에는(田野) (세금으로) 10분의 1을 거두고(什一), 관문과(關) 시장에는(市) (사람들을) 감독하기만(幾, 살펴 보다) 하지 (세금을) 취하지는(征, 취하다, 빼앗다) 않으며, 산림과 택량에는(澤梁,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막아 둔 못) 때에 따라 닫거나 열기만(禁發) 하지 과세하지는 않는다.(不稅) (이렇듯 왕자는) 땅을 잘 살펴서(相地, 相은 살펴 봄) (그에 따라) 세를 낮추거나 높여야 하고(相地而衰政, 노문초는 이 글의 원전이 《국어》 「제어」의 相地而衰征라고 함, 衰는 세금을 낮추는 것, 政은 세금을 높이는 것), 거리가(道) 멀고 가까운 점을 헤아려(理는 里의 오기로 봄, 里는 헤아리다) 공물을(貢, 토산품을 바치는 것, 세금의 일종) 내게 해야(致, 부르다, 보내다, 여기서는 보내도록 하게 한다고 봄) 한다. (이렇게) 재물과 곡식을(粟米, 좁쌀, 여기서는 곡식 일반으로 봄) 유통하여(通流) 정체되지 않게 하니(無有滯留, 滯留는 체류, 정체), (백성들이) 서로서로(相) (재물과 곡식을) 보내고(歸는 饋, 식량을 보내다), 옮기게 하여(移), 온세상이(四海之內) 한 집안처럼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가까운 데 있는 인재들은(近者) 자신의 재능을 숨기지 않을 것이요, 먼 데 있는 인재들은(遠者) 고생하기를(勞) 피하지(疾, 꺼리다) 않을 것이니(가깝고 먼 곳에서 인재들이 고생을 감수하고 기꺼이 왕자를 돕기 위해 나설 것이라는 말), 유한하고 은벽한(幽閒隱僻, 네 글자 모두 구석지고, 한산하고, 어둡다는 말, 아주 후지고 외졌다는 의미) 나라고 뭐고 없이 (모두 왕자에게) 달려와 (왕자의) 명을 받들며(趨使, 趨은 재촉하다, 빨리 오다) 편안해 하고 즐거워 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무릇 이것을 보고 인사(人師, 뭇 사람들의 스승, 모범, 人師는 앞에도 나왔던 말로, 여기서는 왕자가 정치를 잘 하면 천하 사람들이 왕자의 슬하에 모여 왕자를 존경하고, 따를 것이라는 점을 의미)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왕자의 법이로다.
北海則有走馬吠犬焉,然而中國得而畜使之。南海則有羽翮、齒革、曾青、丹干焉,然而中國得而財之。東海則有紫紶、魚鹽焉,然而中國得而衣食之。西海則有皮革、文旄焉,然而中國得而用之。故澤人足乎木,山人足乎魚,農夫不斲削、不陶冶而足械用,工賈不耕田而足菽粟。故虎豹爲猛矣,然君子剝而用之。故天之所覆,地之所載,莫不盡其美,致其用,上以飾賢良,下以養百姓而安樂之。夫是之謂大神。詩曰:“天作高山,大王荒之;彼作矣,文王康之。”此之謂也。
북해에는(北海, 몽골처럼, 멀리 있는 북쪽 땅을 지칭함, 아래에 나오는 南海, 東海, 西海도 모두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함) 주마와(走馬, 잘 달리는 말) 폐견이(吠犬, 잘 짖는 개) 난다.(有) 하지만 (북해가 중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중국에서 구하여(得) 가축으로 부려 먹을 수 있다.(畜使) 남해에는 우핵(羽翮, 큰 새의 깃털), 치(齒, 상아), 혁(革, 물소 가죽), 증청(曾青, 구리를 정제한 것인데, 그림을 그릴 때 쓴다고 함), 단우가(丹干, 丹矸라고도 하며, 진사를 의미함) 난다. 하지만 (남해가 중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중국에서 구하여 보물로써 여길 수 있다.(財) 동해에는 자거(紫紶, 이견이 좀 있는데, 자색 조개라고 하기도 하고, 자색 비단이라고 보기도 함, 하지만 맥락을 볼 때 무언가 입는 것이라고 봐야 할 듯), 물고기(魚), 소금(鹽)이 난다. 하지만 (동해가 중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중국에서 구하여 입고 먹을 수 있다. 서해에는 피혁과 문모(文旄, 旄는 소의 일종으로, 文旄는 그 꼬리에 무늬를 입힌 것)가 난다. 하지만 (서해가 중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중국에서 구하여 사용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처럼(故), 못가에 살더라도(澤人) 나무를 충분히 구할 수 있고(足乎木), 산에 살더라도(山人) 물고기를 충분히 구할 수 있으며(足乎魚), 농부가 (굳이 스스로 나무를) 깎지(斲削, 둘 다 깎는다는 의미, 여기서는 여러 물건들을 만드는 공예를 의미함) 않고, 그릇을 굽지(陶冶, 도야, 도기나 주물을 만드는 것) 않아도 (농부에게는) 계용이(械用, 기물) 충분하고, 공장과(工, 기술자) 장사치가 (굳이 스스로) 농사를 짓지(耕田) 않더라도 (공장과 장사치에게는) 먹을 것이(菽粟, 콩과 조, 식량) 충분하다. 또한(故) 호랑이와 표범이(虎豹) 사납긴 하지만, 군자가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을) 벗겨(剝) 사용할 수 있기도 하다.(산에 살면 물고기를 구하기 쉽지 않고, 물에 살면 나무가 흔치 않은 법임, 위의 글들은 모두 그 사람들이 구하기 힘든 것들을 앞의 문단 내용과 연결되어 사람들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말임, 바로 뒤의 말을 볼 때, 아마도 군자가 정치할 때, 천하의 물산을 효율적으로 유통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 것 같은데, 그 의미가 아주 선명하지는 않음) 이에 군자는 하늘이 덮고 있고(覆), 땅이 싣고 있는(載)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 좋은 점을 전부 이끌어내고(盡其美), 그 쓰임새를 빠짐 없이 이용하지(致其用) 않음이 없다. (그리하여) 위로는 현량한 이가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갖출 수 있게 하고(飾, 꾸미다, 단장하다, 여기서는 수레와 의복을 갖춘다고 보면 좋겠음), 아래로는 백성을 길러내 (백성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한다. 무릇, 이런 것을 보고 대신(大神, 학의행은 神을 治로 보아 大治, 즉 아주 잘 다스려진 상태라고 봄, 물류가 통해 물산이 부족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학의행의 설이 타당하다고 봄)이라 한다. 《시》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이 고산을(高山, 岐山을 의미) 만들었으니, 태왕이(大王, 여기서는 문왕의 할아버지인 太王을 의미) 이를 넓히었다.(荒, 태왕이 기산으로 천도해 주나라의 기초를 닦은 것을 의미함) (태왕이 이룬) 저 업적을 받아(彼作矣) 문왕은 (주나라를) 안정시켰도다.(康之)"(《시》의 「주송 천작」에 나옴, 태왕은 문왕의 조부인 古公亶父를, 고산은 岐山을 의미, 주나라가 기산으로 옮겨 갔을 때부터 세력이 강해졌다고 하고, 원전의 내용 역시 이런 역사적인 것, 순자는 군자가 효율적으로 정치를 펴서 물산이 두루 분배된 상태를 태왕과 문왕의 업적에 비견해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것 같으나, 그 의미가 아주 불투명함)
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以類行雜,以一行萬。始則終,終則始,若環之無端也,舍是而天下以衰矣。天地者,生之始也;禮義者,治之始也;君子者,禮義之始也;爲之,貫之,積重之,致好之者,君子之始也。故天地生君子,君子理天地;君子者,天地之參也,萬物之摠也,民之父母也。無君子,則天地不理,禮義無統,上無君師,下無父子,夫是之謂至亂。君臣、父子、兄弟、夫婦,始則終,終則始,與天地同理,與萬世同久,夫是之謂大本。故喪祭、朝聘、師旅一也;貴賤、殺生、與奪一也;君君、臣臣、父父、子子、兄兄、弟弟一也;農農、士士、工工、商商一也。
큰 기강을 세워 자잘한 일을 처리하고(以類行雜), 한 가지 원칙으로써 만 가지 일을 해결하도록 한다.(以一行萬) (일을) 시작할 때는 (일을) 끝낼 때처럼 하고, (일을) 끝낼 때는 (일을) 시작할 때처럼 하니(始則終終則始), 고리에(環) 끄트머리가(端) 없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일관성 있게 정치를 펴야 한다는 말 같음) (정치인이 정치에 임할 때) 이 원칙을(是) 버리면(舍), 천하가 쇠하고(衰)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생명의(生) 근원이요(始), 예와 의는 정치의(治) 근본이다. (그런데) 예와 의는 군자로부터 시작되니, 예와 의를 행하고(爲之), 예와 의를 이루고(貫之), 행하고 이루기를 반복하여(積重之), 이렇게 하기를 좋아하는 데에 이르면(致好), 그런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왕인지의 의견처럼 마지막의 君子之始也에서 之始는 아마 잘못 들어간 글자라고 생각함이 타당함, 아니면 예와 의에 대한 상기된 행위를 지속하고, 좋아하게 되었을 때가 그 사람이 군자이게 된 시발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러면 너무 번잡함) 이렇듯(故) 하늘과 땅이 군자를 낳았고, 군자는 천지를 다스린다.(理는 治) (이렇게 보았을 때) 군자는 천지(의 일)에 관여하는(參) 사람이요, 만물을 지도하는(摠) 사람이요, 백성의 부모 같은 사람이로다.
(만약) 군자가 없다면, 천지는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요, 예와 의의 기강도 사라져버릴 것이다.(無統) (그렇게 되면) 위로는 군주와 스승도 못 알아 보게 될 것이고, 아래로는 아비와 아들 사이조차도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上無君師下無父子) 무릇, 이런 것을 지란(至亂, 아주 심한 혼란)이라고 한다. 군주와 신하 사이, 아비와 아들 사이, 형과 동생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는 (그) 시작이 끝과 같아야 하고, 끝은 시작과 같아야 하니(일관성 있게 유지되어야 할 윤리적 덕목이니), 하늘과 땅(이 있은 이래)의 일관된(同) 이치였고, 만세가 흐르는 동안에도 일관되게 유지된 오랜 덕목이었다.(同久) 무릇, 이것을 대본(大本, 인간 세상에 있어 아주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윤리라는 의미)이라고 한다.
따라서 상제와(喪祭) 조빙은(朝聘, 朝는 천자와 제후, 聘은 제후와 대부 사이의 알현을 의미) 그 원리가 같고(師旅은 사단, 여단이란 말처럼 모두 군대를 의미하는데, 맥락상 잘못 들어간 글자 같음), 귀하고 천한 것, 죽이고 살리는 것, 베풀고 빼앗는 것도 그 원리가 같다.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빠는 아빠답고, 아들은 아들답고, 형은 형답고, 동생은 동생다워야 하니, 이것도 (역시) 그 원리가 하나로다. (마찬가지로) 농부는 농부답고, 사는 사다우며, 공장은 공장답고, 장사치는 장사치다워야 한다. 이것도 (역시) 그 원리가 하나다.(군자가 예와 의를 행해서 제도와 윤리가 세상에 이행되는 것인데, 그 제도와 윤리가 바로 상기한 상제, 조빙 등이므로, 이 모든 것은 군자에서 시작되고, 그래서 원리가 하나라고 하는 것 같음)
水火有氣而無生,草木有生而無知,禽獸有知而無義,人有氣、有生、有知,亦且有義,故最爲天下貴也。力不若牛,走不若馬,而牛馬爲用,何也?曰:人能群,彼不能群也。人何以能群?曰:分。分何以能行?曰:義。故義以分則和,和則一,一則多力,多力則彊,彊則勝物;故宮室可得而居也。故序四時,裁萬物,兼利天下,無它故焉,得之分義也。故人生不能無群,群而無分則爭,爭則亂,亂則離,離則弱,弱則不能勝物;故宮室不可得而居也,不可少頃舍禮義之謂也。能以事親謂之孝,能以事兄謂之弟,能以事上謂之順,能以使下謂之君。君者,善群也。群道當,則萬物皆得其宜,六畜皆得其長,群生皆得其命。故養長時,則六畜育;殺生時,則草木殖;政令時,則百姓一,賢良服。
물과 불에는 기는(氣) 있지만 생명은 없고, 풀과 나무에는 생명은 있지만 지각은(知, 뒤에 금수에게 知가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지성이나 식견이 아니라 단순히 지각이라고 하는 게 타당하겠음) 없으며, 금수에게는 지각은 있되, 의는(義) 없다. (반면) 사람에게는 기도 있고, 생명도 있고, 지각도 있는데, 그 뿐만 아니라(亦且) 의까지(義) 있다. 따라서 (사람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귀하다 하겠다. (하지만 사람의) 힘은 소만 못하고, (사람의) 달리기는 말만 못하다. 그런데도 (사람이 오히려) 소와 말을 부려 먹을 수 있는 것은(用) 왜 그런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사람은 무리를 만들 수 있고(群, 여기서는 협동 활동이나 사회 생활로 이해할 수 있겠음), 저것들은(彼, 소와 말은) 무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무리를 이룰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무리를 이룰 만한) 명분(을 이끌어낼 수 있고, 또한 명분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分, 신분이라고 보기도 하나, 내용상 명분이 타당함)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그런) 명분을 이행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사람에게는) 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로써 명분을 세우면 (사람들을) 화합시킬(和) 수 있고, (사람들이 서로) 화합하면 (사람들을) 단결시킬(一) 수 있으며, 단결하면 힘이 세지고(多力), 힘이 세면 강해지며(疆), 강하면 (비로소) 동물들에게 이길 수 있게 된다.(勝物) 그 덕분에(故) (사람들은) 집구석에서(宮室)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계절을 따르고(序), 만물을 다스리며(裁), 천하를 아울러(兼)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언가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無它故焉) (단지) 명분과 의에서 나온 것일(得之分義) 따름이다.
무릇(故) 사람은 살면서 (누구와든) 무리를 이루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기껏) 무리를 이루어도 (그 무리에) 명분이 없다면 싸움이 나고(爭), 싸움이 나면 혼란스러워지며(亂), 혼란스러워지면 (사람들이 무리를) 떠나 버리게 되고(離), (사람들이 무리를) 떠나면 (사람들은) 약해진다. 약해진 사람들은 동물들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집구석에서(宮室) (편히)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나는 사람이) 아주 잠시라도(少頃, 아주 짧은 시간) 예와 의를 버릴(舍)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예와 의로써) 부모를(親) 모실(事) 수 있는 것을 보고 효(孝)라고 하고, (예와 의로써) 형을 모실 수 있는 것을 보고 제(弟는 悌)라고 하며, (예와 의로써) 윗사람을(上) 섬길 수 있는 것을 보고 순(順)이라 하고, (예와 의로써) 아랫사람을 부릴(使) 수 있는 것을 보고 군(君, 군주, 왕)이라 한다.
군주는(君) 무리를 잘 이끄는(善群, 무엇을 잘한다는 게 나와 있지 않은데, 뒤의 내용으로 판단할 때 무리를 이끌고 운영하는 것을 잘한다고 보아야 함, 정확히는 養長時, 殺生時, 政令時를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함) 사람이다. (어떤) 무리의 명분이(道인데, 맥락상 앞의 分과 같다고 봐야 함, 헌법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봄) 타당하면, (그 무리 속의) 만물은 모두 자기 역할에 충실하게 될(宜, 마땅함, 스스로의 마땅함을 얻는다는 말이니, 자기 역할을 잘 한다고 봄) 것이요, (그 무리의) 가축은(六畜) 모두 잘 자랄 것이요, (그 무리의) 생물들은 모두 자신의 천수를 누릴 것이다. 때에 맞게 (가축을 잘) 키우면(養長時) 가축들은 (잘) 자랄 것이요(育), 때에 맞게 (나무를) 베고 심으면(殺生時) 초목은 우거질 것이며(殖), 때에 맞게 정(치적 명)령을 내리면(政令時) 백성들은 단결하고, 현량한 자들은 (군주에게) 복종할(服) 것이다.
聖王之制也:草木榮華滋碩之時,則斧斤不入山林,不夭其生,不絕其長也。黿鼉魚鱉鰍鱣孕別之時,罔罟毒藥不入澤,不夭其生,不絕其長也。春耕、夏耘、秋收、冬藏,四者不失時,故五穀不絕,而百姓有餘食也。汙池淵沼川澤,謹其時禁,故魚鱉優多,而百姓有餘用也。斬伐養長不失其時,故山林不童,而百姓有餘材也。聖王之用也:上察於天,下錯於地,塞備天地之間,加施萬物之上,微而明,短而長,狹而廣,神明博大以至約。故曰:一與一是爲人者,謂之聖人。
(이번에는) 성왕의(聖王) 제도에(制) 대해 말 해 보겠다. 초목과 영화가(草木榮華, 榮은 풀꽃, 華는 나무꽃, 즉 모든 식물을 의미) 자라날(滋碩, 번식하고 커짐) 시기에는 도끼를(斧斤, 크고 작은 도끼, 즉 초목과 영화를 베거나 꺾으려는 사람들) 숲과 산에 들이지 않으니, (이렇게 하는 것은) 초목을(其生) 일찍 죽이지(夭) 않고, 초목의(其) 생장을(長) 끊어 버리지(絕) 않기 위함이다. 큰 자라, 악어, 물고기들, 자라, 미꾸라지, 잉어(黿鼉魚鱉鰍鱣, 모두 물에 사는 생물들)가 새끼를 치거나(孕) 새끼가 자라날(別, 새끼가 어미에게서 독립하는 것을 이름) 시기에는 그물이나(罔罟) 독약을 못에(澤) 들이지 않으니, (이것은) 물고기들을(其生) 일찍 죽이지 않고, 물고기들의(其) 생장을 끊어 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봄에는 밭을 갈게 하고(耕), 여름에는 김을 매게 하며(耘), 가을에는 (농작물을) 거두게 하고(收), 겨울에는 (남은 작물을) 보관하게 한다.(藏) (이) 네 가지 일을 할 때를 놓치지 않으면, 오곡을(농사를) 망치지(絕) 않을 것이니, 그러면 백성들이 먹을 곡식이 남게(모자라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어획할(汙池淵沼川澤, 웅덩이, 호수, 못, 냇가, 모든 글자가 물과 관련됨, 여기서는 물고기를 잡는 행위를 의미) 시기를 엄하게(謹) 통제하니(禁), 물고기와 자라가(魚鱉) 넉넉해지고, (또한) 많아져서, 백성들이 써 먹을 수 있는(用) 물고기들이 남게(모자라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나무를) 베고(斬伐) 기르는(養長) 시기를 놓치지(失) 않게 하면, 산과 숲이 민둥민둥하지(童) 않게 될 것이니, 그러면 백성들이 이용할 목재가 남게(모자라지 않게) 될 것이다.
(상기한 성왕의 제도로써 백성들이 받을) 성왕의 시혜(用, 시혜, 이설이 많은데, 양경은 재물에 대한 씀씀이라고 보았고, 장각은 작용이라고 봄, 「비십이자」에서 功用이라 하여 用을 효용으로 사용한 사례가 있기에 효용도 타당하겠으나, 글의 맥락과 뒤의 내용을 볼 때, 성왕의 제도로써 백성들이 입는 시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음)에 대해 말 해 보겠다. (성왕은) 위로는 하늘의 때를(天) 살피고(察), 아래로는 땅의 일을(地) 처리하니(錯), (이렇듯 상기한 성왕의 제도로써 천하를 통치하면 성왕의 시혜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하게 된다.(塞備, 塞는 차거나 채우는 것, 備도 채우는 것, 다만 왕인지는 塞備가 어울리지 않는다 해서 備를 滿으로 봄, 滿도 가득 차 있는 모양) (그리하여 성왕의 시혜는) 만물에(萬物之上) 미치고(加), 베풀어지게(施) 될 것이다. (이렇듯 성왕의 뜻은) 미묘한 듯 하지만 명쾌하고(微而明), 짧은 듯 하지만 길며(短而長), 좁은 듯 하지만 넓고(狹而廣), 신이하고(神明) 깊고 거대한(博大) 듯 하지만(以는 而의 오기로 보임) (오히려) 아주 겸양하다.(至約, 約은 간략, 검소하다는 말, 시혜가 검약하다고 하면 이상하니까, 여기서는 神明博大에 대비되는 의미인 겸양으로 이해) 이에 대해 이런 말이 있다. (백성들에게 바라지 않고) 한결 같이 (백성들에게) 오로지 베풀기만 한다.(一與一是爲人者, 一與一에 대해서도 이견이 아주 많은데, 나는 用을 시혜로 보았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 與도 베푼다는 의미로 보았고, 내용상 성왕의 제도로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으므로, 一을 오로지, 한결 같이라는 의미로 봄) 이런 사람을 성인이라고 한다.
序官:宰爵知賓客、祭祀、響食犧牲之牢數。司徒知百宗、城郭、立器之數。司馬知師旅、甲兵、乘白之數。脩憲命,審詩商,禁淫聲,以時順脩,使夷俗邪音不敢亂雅,大師之事也。脩隄梁,通溝澮,行水潦,安水臧,以時決塞,歲雖凶敗水旱,使民有所耘艾,司空之事也。相高下,視肥墝,序五種,省農功,謹蓄藏,以時順脩,使農夫樸力而寡能,治田之事也。脩火憲,養山林藪澤草木、魚鱉、百索,以時禁發,使國家足用,而財物不屈,虞師之事也。順州里,定廛宅,養六畜,閒樹藝,勸教化,趨孝弟,以時順修,使百姓順命,安樂處鄉,鄉師之事也。論百工,審時事,辨功苦,尚完利,便備用,使雕琢文采不敢專造於家,工師之事也。相陰陽,占祲兆,鑽龜陳卦,主攘擇五卜,知其吉凶妖祥,傴巫跛擊之事也。脩採清,易道路,謹盜賊,平室律,以時順修,使賓旅安而貨財通,治市之事也。抃急禁悍,防淫除邪,戮之以五刑,使暴悍以變,姦邪不作,司寇之事也。本政教,正法則,兼聽而時稽之,度其功勞,論其慶賞,以時慎脩,使百吏免盡,而眾庶不偷,冢宰之事也。論禮樂,正身行,廣教化,美風俗,兼覆而調一之,辟公之事也。全道德,致隆高,綦文理,一天下,振毫末,使天下莫不順比從服,天王之事也。故政事亂,則冢宰之罪也;國家失俗,則辟公之過也;天下不一,諸侯俗反,則天王非其人也。
(이번엔) 관직의 서열(과 그 역할)에(序官)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재작은(宰爵, 秦나라 관직 중에 열후를 응대하는 主爵中尉이라는 것이 있는데, 宰爵은 아마 主爵中尉의 모티브인 고대의 관직일 것 같음) 빈객을 맞이할 때, 제사를 지낼 때, (그리고) 연회를 벌일 때(響食) 쓸 희생의(犧牲, 제사 등에 바치는 동물) 수를(牢數, 牢는 희생을 세는 단위로, 예를 들어 양 한 마리, 소 한 마리를 1牢라고 하는 식임) 주관한다.(知)
사도는(司徒) 백족의 호적과(百宗, 宗은 族, 아마 대부 집안, 즉 귀족들의 호적을 의미하는 것 같음) 성곽, 도구의(立器) 수를 주관한다.
사마는(司馬) 군부대와(師旅, 師는 2500명, 旅은 500명 부대), 갑병들(甲兵, 정예병), (그리고) 전차의(乘白, 전쟁용 수레, 白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음, 학의행은 甸의 오기라고 했고, 왕인지는 伯과 같다고 함, 伯을 따른다면, 수레를 세는 단위로 볼 수 있을 듯) 수를 주관한다.
법리와(憲은 法) (정치적인) 명령을(命) 가다듬고(脩는 修), 시가를(詩商, 商은 章, 양경은 詩商을 誅賞으로 보아 상벌을 주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태사의 일이 아니므로 틀렸을 것임) 심의하며(審, 사람들이 노래로 부를 싯구들을 검토한다는 말인 듯), 음란한 노래들을(淫聲) 금지한다. (이 모든 것들을) 때에 맞게(時順) 이행하여(脩는 修), 오랑캐풍의(夷俗, 오랑캐의 풍속) 삿된 노래가(邪音) (중국의) 올바른 음악을(雅) 감히 어지럽히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태사의(大師, 大는 太로 읽음) 일이로다.(태사에 대해서는 《논어》의 「팔일」에도 음악을 관장한다고 나온 적이 있었음)
제방과 교량을(隄梁) 정비하고(脩), 구혁을(溝澮, 길이나 논밭 사이의 도랑, 여기서는 작은 물길) (다른 곳과 서로) 통하게 하며(通), 물이 고여 있으면(水潦, 潦는 고여 있는 물) 흘려 보내고, 물을 모아 둔 곳은(水臧, 저수지를 이름) 문제가 없도록(넘치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살핀다.(安) (이렇게 관리해 둔 물을) 때에 맞게 흘려 보내거나 막아 두어서(決塞), 설사 홍수나 가뭄(水旱) 때문에 흉년이 드는(凶敗, 두 글자 모두 흉년이라는 말) 해가 있더라도(歲)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耘艾, 耘은 김을 매는 것, 艾는 刈와 같아 풀이나 곡식을 베는 것, 즉 농사를 의미) 곳이 있게 (땅을 보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공의(司空) 일이로다.
(지형의) 높고 낮음을 살피고(相), (땅이) 기름진지(肥) 메마른지를(墝) 확인하며(視), 오곡의 종자를 심을(五種) 순서를 정하고(序), 농삿일을(農功, 농사) 보살피며(省, 농삿일이 잘 되는지 살펴 봄), (수확한 곡식은) 엄하게(謹) 모아 둔다.(蓄藏, 모아서 감추어 둠) (이 모든 것들을) 때에 맞게(時順) 이행하여(脩는 修), 농부들이 순박하게(樸) 농삿일에 힘을 쓰게 하고(농사나 짓게 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寡能, 할 줄 아는 것이 적다, 즉 농삿일 외의 다른 것은 할 수 없게 한다는 말, 웅공철은 能가 罷의 오기라고 하여 지치지 않게 한다고 보았으나, 맥락상 농사가 잘 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또한 유학의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寡能이 보다 타당하다고 봄) (이것이 바로) 치전의(治田) 일이로다.
(산이나 들에) 불을 지르는 것에(火, 불을 질러 땅을 비옥하게 한다는 목적인 것 같음) 대한 법을 가다듬고, 산과 숲, 늪과(藪) 못, 풀과 나무, 물고기와 자라, 채소들을(山林藪澤草木魚鱉百索, 이 중 百索에 대해 왕인지는 索이 素의 오기이고, 素는 蔬의 옛 글자이니, 百索은 百蔬라고 함, 채소라는 의미) 길러 낸다. (이렇게 기른 것들을 채취하기를) 때에 따라 막기도 하고(禁), 허용하기도 하니(發), (이로써) 나라에서(國家) (이 자원들을) 필요한 만큼(足) 쓸 수 있게 하고, (또한 국가의) 재물이 바닥나지(屈) 않게 한다. (이것이 바로) 우사의(虞師) 일이로다.
주와 리를(州里, 행정 단위들) 교화하고(順, 가르치고 이끌다, 혹은 治로 볼 수도 있겠음), 시장과 주거지(의 경계)를(廛宅, 둘 다 주거 건물을 이르는데, 廛는 시장의 주거 건물, 宅은 주거 지역의 주거 건물을 이름) 정하며, 가축들을(六畜) 기르고, 수예를(樹藝, 식물 기르는 기술) 익히며(閒, 왕염손은 閒은 閑과 같고, 閑은 習과 같다고 봄), (백성들을) 교화시키기 위에 노력하고(勸), (백성들이) 효제를 따르도록(趨, 추구하다, 따르다)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을) 때에 맞게(時順) 이행하여(脩는 修), 백성들이 (나라의) 명령(命)에 따르도록 하고, 고향에서(鄉) 편안하고 즐겁게 살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향사의(鄉師) 일이로다.
백공들(의 재능)을(百工, 기술자들) 평가하고(論), 시기에 맞는 일이(時事) 무엇인지 살피며(審), (백공들이 만든 물건들이) 훌륭한지 조악한지를(功苦) 분별하고, (마찬가지로 백공들이 만든 물건들의) 완성도와 가치를(完利) 판단한다.(尚, 주관하다) (그리하여 각종) 물품들을(備用) (나라에서) 편하게 쓸 수 있게 하고(便), 조탁과 문채를(雕琢文采, 雕琢은 조각품을, 文采은 文彩와 같아 무늬를 의미, 雕琢文采는 수공예품들을 의미함) 민간에서(於家) 감히 사사로이 만들지(專造) 못하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공사의(工師) 일이로다.
음양의 이치를(陰陽) 살피고(相), 재앙의(祲) 조짐을(兆, 빌미, 조짐, 혹은 거북이 등으로 치는 점을 의미하기도 하나 바로 뒤에 鑽龜가 따로 나오므로 여기서의 의미는 아닐 것임) 점치며, 찬귀하고(鑽龜, 거북이 등을 뚫고 불을 붙여 점을 보는 방법), 진괘한다.(陳卦, 蓍草라는 풀을 써서 괘를 늘어 놓는 방법) (또한) 양택과(攘擇, 재앙을 쫓는 제사라고 함) 오복(의 해석)을(五卜, 《서》의 「홍범」에 나오는 것으로, 雨, 霽, 蒙, 驛, 剋이고, 거북이 점의 결과라고 함) 주관하여, 그 길흉요상(吉凶妖祥. 좋고, 나쁘고, 이상하고, 상서로움)을 안다. (이것이 바로) 구무와 파수의(傴巫跛擊, 巫는 여자 무당, 擊는 覡와 같아 박수, 즉 남자 무당을 의미, 傴는 허리가 구부러진 모양, 跛는 절름발이, 傴巫와 跛擊가 관직 이름인지, 아니면 그냥 몸의 장애를 표현하기 위해 傴와 跛를 쓴 것인지 모르겠음) 일이로다.
(저자를 감독하는) 관청의(採, 유월은 埰와 같다고 보았는데, 晉나라와 秦나라에서는 무덤을 埰라고 했다고 함, 하지만 맥락상 시장에 관한 말이어야 하기 때문에 무덤일 수 없음, 따라서 採를 寀라고 보아 관청이라고 봄, 다만 다른 구문에서는 모두 병렬적인데, 왜 이 구문에서만 寀가 뒤의 清을 수식하게 해 놓았는지 의뭉스러움) 화장실을(清, 圊과 같고, 화장실을 의미) 관리하고, 길을 평평하게 정비하며(易, 평평하다), 도둑놈들은(盜賊) 엄하게 처분하고, 저자(의 질서)를(室律, 학의행은 律이 肆의 오기라고 봄, 肆는 시장의 점포, 室은 아마도 시장의 건물들이라고 생각) 바로잡는다.(平) (이 모든 것들을) 때에 맞게(時順) 이행하여(脩는 修), 행상들이(賓旅, 賓은 손님, 외교관 같은 것이므로 시장과는 관련이 없음, 왕인지는 賓을 𧶜의 오기라고 했고, 𧶜은 商과 같음, 즉 商旅, 행상) 편안(히 장사)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재화가 (나라 안에 잘) 통하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치시의(治市) 일이로다.
약아 빠진 놈들을 저지하고, 사나운 놈들을 억누르며(앞에 析愿禁悍이 그랬듯, 抃急禁悍은 折傆禁悍으로 봄), 음란한 놈들을 막고(防淫), 사악한 놈들을 없애야 하니(除邪), (이런 죄인들을) 오형에(五刑, 墨, 劓, 剕, 宮, 大辟의 다섯 형벌, 모두 신체를 훼손함) 따라 죽여 버린다. (그리하여) 난폭하고 사나운 놈들이 (자신의 성질을) 고치게 하고(變), (사람들이) 간악하고 사악한 짓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사구의(司寇) 일이로다.(「유효」에서 공자가 司寇에 오른 뒤 노나라에서 어떤 점이 바뀌었는지 나와 있음)
(백성을) 바로잡고 교화하는 것에(政教) (뜻의) 근본을 두고, 법리와 규칙을(法則) 바로잡으며, (뭇 관리들의 의견을) 겸청하고(兼聽,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 이로써 (관리들을) 평가하는 일을(稽) 주관하니(時), 관리들의(其) 공로를 헤아려서(度), 상을 주는 것에 대해(慶賞) 논의한다. (이 모든 것들을) 때에 맞게(時慎, 앞에서는 모두 時順이었으므로, 時順으로 봄) 이행하여(脩는 修), 백관들이(百吏) (자신의 직무에) 힘을(免은 勉) 다 하도록 하고, 평민들이(眾庶) 교활해지지(偷) 않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총재의(冢宰) 일이로다.
예와 악에 대해 논하고, (백성들의) 몸가짐과(身) 행동을 바로잡으며, (백성들에 대한) 교화를 넓히고, 풍속을 아름답게 교정한다.(美) (이리하기를) 반복하여(兼覆, 겹치고 포개는 것, 즉 반복) (백성들을) 조일하니(調一, 조율하고 통합함), (이것이 바로) 벽공의(辟公, 제후) 일이로다.
도와 덕을 온전히 보존하여(全) 지극히 높히고(致隆高), 제도의(文) 원리를(理) 완벽하게 다듬는다.(綦는 極) (그리하여) 천하를 하나로 합치고, 털 끝 만한 잘못이라도(毫末) 바로잡으니(振), 천하 사람들이 (이 자를 모두) 따르게 하여(順), 복종할 정도가 되지(比從服)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천왕의(天王, 천자) 일이로다.
그러니 (역으로) 정치가 어지러운 것은 총재의 잘못이요, 나라가 (올바른) 풍속을 잃어버린 것은 벽공의 잘못이며, 천하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제후들은 반역을 일으키고 싶어(俗은 欲) 한다면, (이것은) 천왕이 천왕 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기(非其人) 때문이로다.
具具而王,具具而霸,具具而存,具具而亡。用萬乘之國者,威彊之所以立也,名聲之所以美也,敵人之所以屈也,國之所以安危臧否也,制與在此,亡乎人。王、霸、安存、危殆、滅亡,制與在我,亡乎人。夫威彊未足以殆鄰敵也,名聲未足以縣天下也,則是國未能獨立也,豈渠得免夫累乎?天下脅於暴國而黨,爲吾所不欲,於是者日與桀同事同行,無害爲堯。是非功名之所就也,非存亡安危之所墮也。功名之所就,存亡安危之所墮,必將於愉殷赤心之所。誠以其國爲王者之所亦王,以其國爲危殆滅亡之所亦危殆滅亡。殷之日,案以中立,無有所偏,而爲縱橫之事,偃然案兵無動,以觀夫暴國之相卒也。案平政教,審節奏,砥礪百姓,爲是之日,而兵剸天下勁矣。案然修仁義,伉隆高,正法則,選賢良,養百姓,爲是之日,而名聲剸天下之美矣。權者重之,兵者勁之,名聲者美之。夫堯舜者一天下也,不能加毫末於是矣。權謀傾覆之人退,則賢良知聖之士案自進矣。刑政平,百姓和,國俗節,則兵勁城固,敵國案自詘矣。務本事,積財物,而勿忘棲遲薛越也,是使群臣百姓皆以制度行,則財物積,國家案自富矣。三者體此而天下服,暴國之君案自不能用其兵矣。何則?彼無與至也。彼其所與至者,必其民也。其民之親我,歡若父母,好我芳如芝蘭,反顧其上則若灼黥,若仇讎;彼人之情性也雖桀跖,豈有肯爲其所惡,賊其所好者哉!彼以奪矣。故古之人,有以一國取天下者,非往行之也,脩政其所,天下莫不願,如是而可以誅暴禁悍矣。故周公南征而北國怨,曰:“何獨不來也!”東征而西國怨,曰:“何獨後我也!”孰能有與是鬥者與?安以其國爲是者王。殷之日,安以靜兵息民,慈愛百姓,辟田野,實倉廩,便備用,安謹募選閱材伎之士,然後漸賞慶以先之,嚴刑罰以防之,擇士之知事者,使相率貫也,是以厭然畜積修飾,而物用之足也。兵革器械者,彼將日日暴露毀折之中原;我今將脩飾之,拊循之,掩蓋之於府庫。貨財粟米者,彼將日日棲遲薛越之中野,我今將畜積并聚之於倉廩。材伎股肱健勇爪牙之士,彼將日日挫頓竭之於仇敵,我今將來致之,并閱之,砥礪之於朝廷。如是,則彼日積敝,我日積完;彼日積貧,我日積富;彼日積勞,我日積佚。君臣上下之間者,彼將厲厲焉日日相離疾也,我將頓頓焉日日相親愛也,以是待其敝。安以其國爲是者霸。立身則從傭俗,事行則遵傭故,進退貴賤則舉傭士,之所以接下之人百姓者則庸寬惠,如是者則安存。立身則輕楛,事行則蠲疑,進退貴賤則舉佞侻,之所以接下之人百姓者則好取侵奪,如是者危殆。立身則憍暴,事行則傾覆,進退貴賤則舉幽險詐故,之所以接下之人百姓者,則好用其死力矣,而慢其功勞,好用其籍斂矣,而忘其本務,如是者滅亡。--此五等者,不可不善擇也,王、霸、安存、危殆、滅亡之具也。善擇者制人,不善擇者人制之。善擇之者王,不善擇之者亡。夫王者之與亡者,制人之與人制之也,是其爲相縣也亦遠矣。
(왕자가 될 만한) 기량을 갖추면(具具, 具는 갖추다, 준비하다, 기량, 조건, 하나는 명사, 하나는 명사로 보아서 具具는 조건을 갖추다, 기량을 갖추다는 말) 왕자가(王, 覇에 대비되는 왕) 될 수 있을 것이요, (패자가 될 만한) 기량을 갖추면 패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라를 보존할 만한) 기량을 갖추면 (나라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요(存), (나라가 망할 만한) 조건이 된다면 (나라가) 망할 것이다.(亡) 만승의 국가를(萬乘之國, 천자의 나라를 의미) 다스리는(用) 자를 생각해 보자. (이런 자의) 위엄과 힘이(威彊) 서는 이유, 명성이 드높은(美) 이유, (그) 적들이 (이 자에게) 굴복하는 이유, (이 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편안하거나 위태롭거나, (그리고 그 나라의 상황이) 좋거나 그렇지 않거나(臧否) 하는 이유의 관건은(制) 모두(與는 擧, 皆) 만승지국의 통치자에게(此) 있을 뿐이니, 남(人)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亡은 無,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不有처럼 번역함) (마찬가지로) 왕자가 되느냐, 패자가 되느냐, 평화롭게 기거할(安存) 수 있을 것이냐, 위태롭게 될 것이냐, 멸망할 것이냐는 것의 관건은 모두 나에게 있는 것이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릇, (어떤 나라의) 위엄과 힘이 이웃한 적을(鄰敵) 무너뜨리기에(殆) 충분하지 못하고(未足), (그 나라의) 명성은 천하를 저울질해 보기에는(왕선겸은 縣은 衡으로 봄, 저울, 저울질하다) 모자라다고 하자. 그러면(則) 그 나라는 (천하에) 홀로 설(獨立, 여기서는 주변 나라들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를 의미하는 듯) 만하지 않은 것이니, 어찌(豈渠, 두 글자 모두 어찌라는 말) (자기 나라의 입지에 대한) 걱정을(累) 면할 수 있겠느냐. 온천하가 난폭한 나라에게 위협당할 때(脅),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이런 나라가 난폭한 나라와 어쩔 수 없이) 함께 행동했는데(黨), (사실은) 그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吾所不欲) 해 보자.(爲, 가정) 이런 나라들은 날이면 날마다(日) 걸(왕 같은 폭군)과(桀) 함께(與) 같은 일을 벌이고, 같은 행위를 했더라도, (그 업이 이 나라의 왕이) 요처럼(堯, 요임금) 되는 것에 해가 되지는 않을(無害) 것이다.(그런 행위를 벌였더라도 사실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요임금 같은 성군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행위로(是) 공로와 명성을 이룰(就)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행위 때문에 국가의) 존망이나 안위가 결정되는(墮는 隨의 오기로 봄, 隨는 따라 오다, 딸려 오다) 것도 아니다. 공로와 명성을 얻게 되는 원인(所), (그리고 국가의) 존망과 안위가 결정되는 원인은(所) (나라가 자립할 수 있냐 없냐, 피치 못하게 나쁜 짓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같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오히려(將) (백성들을) 기쁘게 하고(愉) (나라를) 번성시키고자 하는(殷) (위정자의) 순수한 마음에(赤心)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정자가) 진심으로(誠, 여기서는 바로 앞의 赤心의 의미를 고려해서 이해함이 타당하겠음) 자신의 나라를(其國) 왕자의 나라로 만들고자 할 때(爲王者之), 그것(이 실현될지, 안 될지의 갈림길)은 (위정자가) 또한 왕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에 달려(所) 있는 것이고(所亦王, 글자가 불충분해서 의미가 아주 선명하지는 않지만, 앞의 내용이 위정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것이므로, 王을 王이 될 만한 자격, 자질, 마음을 갖추었다고 봄), (마찬가지로 위정자가 진심으로) 자기 나라를 위태롭고, 멸망하도록 하고자 한다면(爲危殆滅亡之), 그것(이 실현될지, 안 될지의 갈림길)은 (위정자가) 또한 (나라를) 위태롭게 하거나 멸망시키려는 마음이 있는지에 달려(所) 있는 것이다.(所亦危殆滅亡)
(나라가) 번창할 시기에(日, 시기, 때) (외교적으로) 중간에 서서(中立, 외교적 중립을 의미) (다른 나라를) 편 드는 일이(所偏) 있지 않게 하고, 합종이니 연횡이니 하는 일에도 끼어들지 않으며(而爲縱橫之事, 縱橫은 합종과 연횡으로 볼 수도 있고,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로 새길 수도 있는데, 전자로 보면 而를 無로 보아야 하고, 실제로 다른 판본에는 無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음, 내용상 전자가 타당하다고 봄), 편안한 태도로(偃然) 군대를 눌러 두고(案兵, 案은 按, 억누르다, 여기서는 군대를 위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군대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수사하기 위해 쓴 말) 쓰지 않고(無動, 여기서는 함부러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말), 포악한 나라들이(暴國) 서로 전쟁을 벌이는(卒은 捽, 싸우다) 것을 (그저) 지켜 보기만 한다고 하자. 이런(나라가 번창하는) 시기에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찌(案은 安) (그 나라의) 권세가 세상에서 가장 크게 되지 않겠느냐.(安은 접속사로 '어찌'라는 의미가 있는데, 보통 矣 같은 어미를 수반함, 조천정, 왕천해는 이 문구 뒤에 爲是之日而權剸天下重矣 같은 문구가 빠지지 않았나 추측했는데, 이 다음 문장들의 형식이 모두 비슷하므로, 완전히 저 문구와 같지는 않더라도 矣로 끝나는 문구가 빠졌을 것이라는 점엔 나도 동의함, 여기서는 조천정, 왕천해의 의견을 따라 번역) (마찬가지로 나라가 번창할 시기에) 정치와 교화를 바로잡고(平), 곡조(가 올바른지)를(節奏, 음악, 노래, 여기서는 백성들의 정신, 풍속이라고 보는 것이 맥락상 타당해 보임) 살피며(審), 백성들을 훈련시킬(砥礪, 鍊磨, 硏磨와 같음, 숯돌에다 쇠를 가는 것, 단련) 수 있다고 하자. 이런 시기에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찌(案) (그 나라의) 군대가(兵) 세상에서 가장(剸은 專, 오직, 오로지) 강하게(勁) 되지 않겠느냐.(矣) (마찬가지로 나라가 번창할 시기에) 인과 의를 닦아(然修仁義, 然은 잘못 들어간 말로 보임) 높이(隆高) 숭상하고(伉, 높고 크다), 법리와 규칙을(法則) 바로잡으며, 현량한 인재들을 뽑고(選), 백성을 길러낼(養) 수 있다고 하자. 이런 시기에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찌(案) (그 나라의) 명성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게(美) 되지 않겠느냐. (상기한 대로 한다면) 그 나라의(之) 권세는 크고, 그 나라의 군대는 강하며, 그 나라의 명성은 찬란해질 것이다. 무릇, 요와 순이 천하를 통합한(一天下) 방법(과 비교해 보아)도, 이 방법에서(是) 털 끝 하나(毫末) 보탤 수 없을 것이다.
(못된) 계략을 꾸며서(權謀) (남을) 해치려는(傾覆, 傾는 기울다, 覆뒤집어지다) 놈들이 사라지면(退), 어찌(案은 安) 현량하고, 똑똑하며, 걸출한(聖) 선비들이(士) 스스로 모여들지(進, 退의 반대) 않겠느냐.(矣) 형벌과 정치가 공평하고(平), 백성들은 (서로) 화합하며, 나라의 풍속은 알맞다면(節), 군대는 강해지고, 성채는 견고해질 것이니, 어찌(案) 적국이 스스로 굽신거리지(詘) 않겠느냐. 농사에(本事, 백성 각자의 본분처럼 볼 수도 있겠으나, 바로 뒤의 積財物을 볼 때 농사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해 보임) 힘쓰고, 재물을 모아서, 헛되게(忘은 妄의 오기이거나, 잘못 들어간 글자로 보임, 여기서는 妄으로 봄) 놀고 먹거나(棲遲, 천천히 노는 것) 낭비하지(辥越, 노문초는 屑越, 즉 쉽게 버린다, 낭비하다는 말로 봄) 말아야(勿) 한다. 이렇듯 신료들과(群臣) 백성들이 모두 법도를(制度) 따르게(行) 한다면(使), 재물이 모일 것이니, 어찌(案) 나라가 부유해지지 않겠느냐.
이 세 가지를 이룬다면(體, 체험하다, 체득하다, 이루다) 천하가 (우리 나라에) 복종할 것이니, 어찌 포악한 나라의 군주가 자연스레(自) 자기(其) 군대를 (우리 나라에) 쓸 수 없게 되지 않겠느냐. 왜 그럴까.(何則) 저 나라와(彼, 暴國을 의미) 더불어 친근하다고 할 수 있는(至)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전쟁을 하려 해도 군대로 끌어 들일 사람이 있어야 전쟁을 할 테니까) 저 나라와 더불어 친근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그 나라의 백성일(其民) 것이다. (그런데) 그 나라의 백성은 우리 나라를(我) 좋아하기를, (자기) 부모(를 모시기)와 같이 기뻐하고(歡), 우리 나라에서 지란의(芝蘭, 지초와 난초, 둘 다 향초) 향기가 나듯(芳) 한다. (하지만) 도리어(反) 자기의 왕은 (얼굴에) 먹자를 새긴 죄인이나(灼黥, 墨刑을 의미, 얼굴이나 몸에 먹실로 글자를 새기는 형벌) 원수처럼(仇讎, 원수) 생각한다.(顧, 돌아보다) 저 나라 사람들(彼人)의 성정이(情性) 설사(雖) 걸이나 도척과(跖) 같(이 비루하)더라도, 어찌(豈) (원수처럼) 미워하는 자에게(其所惡, 자기 나라의 왕을 의미) 동조하여(有肯, 肯은 수긍하다, 수긍하는 점이 있어, 동조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자를(우리 나라를 의미) 해치려(賊) 하겠느냐. 저 나라는(彼) (자기 백성들의 마음을 우리 나라에게 이미) 빼앗겨 버린 것이다.(상기한 權謀傾覆之人退, 刑政平百姓和國俗節, 務本事積財物而勿忘棲遲薛越也是使群臣百姓皆以制度行의 세 가지를 이루었다면, 적국의 백성들조차도 우리 나라를 좋아하게 될 것이므로, 우리 나라가 타국에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
따라서 옛 사람 중에는 하나의 나라로써 천하를 얻은 자가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온세상을) 병탄하고 다니며(往行, 맥락상 往을 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음, 征은 치다) 천하를(之) 얻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 나라의(其所) 정치를 돌보았을 뿐인데 천하에 (이 사람을) 사모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사람은) 이와 같이만 하여서도(자기 나라의 정치를 잘 돌보기만 해서) 광포한 나라를 주벌하고(誅暴), 사나운 나라를 제지할(禁悍)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가 이러하기에) 주공이 남쪽을 정벌했을 때(南征) 북쪽 나라들이 (주공을) 원망하며, 어찌(何獨) (우리를 정벌하러는) 오지 않느냐고 하였고, (주공이) 동쪽을 정벌했을 때는 서쪽 나라들이 (주공을) 원망하며 어찌 우리의 순서는 나중이냐고 원망했던 것이다.(주공이 섭정으로서 주나라를 잘 다스렸으므로, 주공이 군사적으로 위압하지 않았음에도 주변 나라들이 스스로 주나라에 귀부하려 했다는 말) (당시의 상황이 이러했으니) 누가(孰) 능히 이런 자와(주공 같은 정치인과) 싸움을 벌일 수 있겠느냐. 자신의 나라를(其國) 이렇듯(是) 다스릴 수 있는 자를 어찌(安) 왕(王)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라가) 번창할 시기에 어찌(安) 군대는 가만히 두고(靜), 사람들을(民) 쉬게 하며(息), 백성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慈愛百姓), 밭과 들을 개간하며(辟), 창름을(倉廩, 식량 창고) 채우고, 기물들(의 사용법)을(備用) 익히지(便) 않겠느냐. (또한 나라가 번창할 시기에) 어찌(安) (인재를) 신중하게(謹) 가리고, 뽑으며(募選), 재능과 재주가 있는 선비를 분간해(閱) 내지 않겠느냐. 그런 뒤에 점차(漸) 상을 주어(賞慶) (기용한 선비들을) 이끌어 주고(先), 엄하게 형벌을 내려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막으며(防), 선비들 중 일을 잘 할 수 있는 자를(知事者) 골라(擇), 끊임 없이(相率, 연이어, 연달아) (나라의 현안들을) 처리하게(貫, 이루다, 달성하다) 한다. 이로써(是以) (국가가) 여유를 가지고(厭然, 安然과 같음) (재물을) 축적하고, (제도를) 정비할(修飾, 손 보다, 정비하다) 수 있을 것이니, (국가와 백성들에게 필요한) 물자는(物用, 備用이나 械用와 같음) 풍족해질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 나라가 이렇게 되는 동안, 다른 나라는 어떨지 생각해 보자.) 군대와 갑옷(革, 가죽으로 만드는 병기), 병기들을(器械) 생각해 보자. 다른 나라는(彼) (병혁기계를) 오히려(將) 벌판에(原, 평원) (방치해) 둔 채로 날마다(日日) 썩히게 되겠지만(暴露毀折, 네 글자 모두 허물어지다, 부숴지다, 상하다는 의미), 우리 나라는 도리어(將) 병혁기계를 바로(今) 손질하고(脩飾), 어루만지며(拊循, 둘 다 어루만지다는 말), 부고에(府庫, 창고) 숨겨(掩蓋, 숨기다, 덮어 두다) 둘 것이다. (이번엔) 재물과 식량(貨財粟米)을 생각해 보자. 다른 나라는 (이것들을) 오히려 들에(野) 둔 채로 날마다 방치하고(棲遲, 천천히 논다는 말이니 방치해 둔다는 말) 낭비하게 되겠지만(薛越, 糟蹋과 같아 낭비한다는 말), 우리 나라는 도리어 식량과 재물을 바로 창름에(倉廩, 창고) 쌓아 두고, 모아 둘 것이다.(畜積并聚) (이번에는) 재능이 있고, (국가의) 고굉과 같으며(股肱, 팔과 다리, 아주 중요한 것을 이르는 말), 튼튼하고 용감한(健勇) 조아지사를(爪牙之士, 수족, 앞의 股肱과 비슷함, 발톱과 어금니 같은 선비, 아주 중요한 사람) 생각해 보자. 다른 나라는 오히려 (자기 나라의) 구적(仇敵, 원수)이 조아지사를(之) 날마다 좌둔하고(挫頓, 마음이나 기운이 꺾임), 무너뜨리게 (방치해) 두겠지만, 우리 나라는 도리어 조아지사를 바로 (우리 나라로) 초청하고(來致), (쓸 만한 사람을) 가려내며(并閱), (우리) 조정에서 (이들의 기량을) 갈고 닦게(砥礪) 할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다른 나라는 날이 갈수록 더욱 황폐해지겠지만(積敝) 우리 나라는 날마다 더욱 견고해질 것이고(積完), 다른 나라는 날이 갈수록 더욱 가난해지겠지만 우리 나라는 날마다 더욱 부유해질 것이며, 다른 나라는 날이 갈수록 더욱 고달파지겠지만(積勞) 우리 나라는 날마다 더욱 편안해질(積佚) 것이다. (이번엔) 군주와 신하, 위와 아래의 관계(間)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다른 나라의 군주와 신하들은 (관계가) 오히려 나빠질(厲厲, 厲는 미워하다, 싫어하다) 것이니 날이 갈수록 서로 멀어지고 미워하게(離疾)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군주와 신하 사이가) 도리어 후해질(頓頓, 頓은 敦이고, 敦은 厚, 사이가 두터운 모양) 것이니 날마다 서로 가까워지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위정자는) 이 방법으로써 다른 나라가(其) 피폐해지기를 기다려야 하니, 자신의 나라를(其國) 이렇듯(是) 다스릴 수 있는 자를 어찌(安) 패(覇)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처세할 때는(立身) 보통 관습을(傭俗, 학의행은 傭은 庸과 같다고 했음, 庸은 평범함) 따르고(從), 일을 할 때도(事行) 평범하게 선례를(故) 따를(遵) 뿐이며, (사람을) 임용하는 모습을 보면(進退貴賤, 이견이 많으나, 進退는 등용하거나 파직하는 것, 貴賤은 직위나 작위를 내리거나 빼앗는 것이고, 맥락상 여기서 말 하는 사람은 왕이나 제후이므로, 여기서는 사람들을 임용하는 전반적인 모습이라고 이해함) (쓰거나 버리는 인재가) 모두(擧는 皆) 평범한 선비들 뿐이다.(傭士) (또한) 그(之는 其) 아랫사람이나(下之人) 백성들을 대할(接, 대우하다) 때의 모습을 보아도 평범하게 너그럽고, 은혜롭다.(庸寬惠, 아주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게, 특출난 것 없이 백성들을 대한다는 말) (자기 나라를) 이와 같이 할(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안존(安存, 여기서는 위의 王, 覇와 병렬적인 개념, 아래의 危殆, 滅亡도 같음)이로다.
처세하는 모습은 천박하고(輕) 질이 나쁘며(楛), 일을 할 때는 (쓸 데 없는 것을) 파고 들며 의심할 줄만 안다.(蠲疑, 蠲은 원래 밝다는 의미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파고 들기를 좋아한다는 말이나, 疑가 부정적이고, 맥락 역시 疑와 같으므로 蠲도 부정적으로 봐야 함) (사람을) 임용하는 행태를 보면 (쓰고 버리는 사람이) 모두 간사하고 교활한(佞侻) 놈들 뿐이다. 그 아랫사람이나 백성들을 대할 때의 모습을 보면 (백성들이 갖고 있는 것을) 침탈하는 것이나(侵奪) 좋아할 뿐이다. (자기 나라를) 이와 같이 하는(다스리는) 놈은 위태(危殆)로다.
처세하는 모습은 교만하고 난폭하며(憍暴), 일을 할 때는 (그 태도가 아주) 편향되며(傾, 기울다), (결국) 제대로 해 내지도 못한다.(覆, 엎어지다, 넘어지다) (사람을) 임용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쓰고 버리는 사람이) 모두 음침하고, 음험하며, (남을) 속이고, 거짓말이나 하는 놈들 뿐이다.(幽險詐故, 故는 거짓) 그 아랫사람이나 백성들을 대할 때의 모습을 보면, 부하와 백성들이(其) 죽을 힘을 다 하도록 써 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이들이 세운 공로는 보잘 것 없는 것처럼 여기며(慢, 거만하다, 여기서는 맥락상 아랫사람들이 세운 공로를 무시하고, 과소평가한다는 말), 부하와 백성들에게서 세금을(籍) 거두어(斂) 쓰는 것은 좋아하지만 이들이 원래 해야 할 일은(本務, 백성이든 부하든 그 신분과 위치에 따라 농사처럼 원래 종사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은 잊어버리고 세금을 거둬 들이는 것에만 혈안이므로 결국 나라를 망친다는 말) 잊어버린다. (자기 나라를) 이와 같이 하는(다스리는) 놈은 멸망(滅亡)이로다.
이 (군주의) 다섯 등위들은(王, 霸, 安存, 危殆, 滅亡을 의미) (군주로서) 잘 분간하지(善擇)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바로 군주 자신이) 왕이 되느냐, 패가 되느냐, 안존이 되느냐, 위태가 되느냐, 멸망이 되느냐 하는 조건이기(具) 때문이다. (이 조건들을) 잘 고르는(擇) 군주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게 될 것이고(制人), (이 조건들을) 잘 고르지 못하는 군주는 다른 사람에게 다스려지게 될 것이니(人制之), (이 조건을) 잘 분간한 군주는 왕이 될 것이요, 잘 분간하지 못한 군주는 망(亡, 滅亡)이 될 것이다. 대저, 왕이 될 군주와 망이 될 군주, (그리고) 남을 다스릴 군주와 남에게 다스려질 군주, 이들의 차이는(相縣, 縣은 떨어진 것을 의미) 또한 크다(遠) 하겠다.
이번 편의 이름인 '王制'는 표현 그대로 '왕의 제도'를 의미합니다. '制'는 제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법리, 규칙, 제도, 정치 등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편은 왕이 펼쳐야 할 정치에 대해 포괄적으로 기술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王'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보통 왕을 우리는 황제나 왕이라고 할 때처럼, 국가의 지배자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특히 유학자들은 '王'을 이상적인 통치차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맹자》에 자주 나오는 '王道'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저는 《순자》를 읽기 전까지는 '王'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맹자밖에 없는 줄 알았지만, 순자 역시 맹자와 같이 사용합니다. 다만 순자와 맹자의 정치 이념이나 시각에 차이가 있다는 점은 여러 차례 설명드린 바와 같고, 「비십이자」에서 순자가 자사, 맹자 등을 비판하고, 자궁을 높인 것을 고려할 때, 순자와 맹자가 유가 안에서 서로 다른 학파였음에도 '王'을 유사한 용법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王'이 유가 안에서 세부 학파에 상관 없이 쓰인 공통 용어라는 의미니까요. 이처럼, 유학자들이 줄곧 사용하는 '王'이 단순히 국가의 통치자를 의미하는 왕과는 다르기 때문에, 보통 번역가들은 유학자들의 '王'을 '왕자'처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단어를 조금 변형에서 씁니다. 사실 왕자라는 말은 '王子'라고 써서 왕의 아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王者'라고 써서 '왕이라는 사람', '왕된 사람',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풀이하기도 하니까요. 저도 본편 번역 중간에는 '왕자'라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이 점을 혼동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유학자들이 '王'을 글에 사용할 때에는 대체로 왕과 대립하는 개념을 함께 사용합니다. 이럴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覇'입니다. '覇'는 춘추오패로 표상되는 패자들을 보통 의미합니다. '霸'라고도 쓰죠. 넓게 본다면 패자들의 정치, 패자들의 처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왕과 패를 대립시키는 기법은 이미 《맹자》에 많이 등장하고, 《순자》에도 자주 나옵니다. 이번 편인 「왕제」에도 나오고, 「유효」에는 '伯'이라고 나오며, 「중니」나 「비상」에도 나옵니다. 순자와 맹자는 하나 같이 패자를 비판하고 왕자를 높입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왕자가 유가의 이상적인 통치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학파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모델이니까 당연히 높이겠죠. 다른 이유는 유학자들이 패자를 자기 나라를 다스리는 것 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겸병하는 데 관심을 더 우선적으로 두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습니다. 춘추오패 중 가장 옛날 사람인 제나라의 환공을 생각해 봅시다. 환공은 연나라를 도와 북적을 축출하고,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회맹을 열어 제후들과 함께 주나라를 모시기를 결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명재상' 관이오가 있었죠. 반면 시대적으로 패자의 말석에 앉았던 오나라의 부차나 월나라의 구천은 주변 나라들과 싸움을 벌이고, 영토를 넓히는 데 국정의 초점이 있었습니다. 오나라는 강대했던 초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 붙였으며, 회맹을 주도하기도 했지만, 그 역할이 제나라의 환공에 미칠 바는 아니었고, 종국에는 구천에게 나라가 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월나라는 오나라를 합병한 이후, 제나라와 노나라로 문어발을 뻗었지만, 나중에 초나라에게 망하고 말았죠. 이들이 춘추오패의 일원이 된 것은 나중 사람들이 이들을 패자라고 표상했기 때문이겠으나, 이처럼 환공과 부차, 구천의 행보는 상이했습니다. 나머지 패자를 합하더라도, 이들에게 공통되는 행보를 굳이 따지라면 무력으로 질서를 구축하거나, 타국을 정복하려 했다는 점밖에 없죠. 사실 왕자의 정치에 비해, 패자의 정치라는 것은 아주 희미하고, 불명확한 개념입니다. 유학자들이 패자를 비판한 논설을 보려면, 이런 맥락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니」 해설에 제가 설명해 두기도 했고, 「중니」 본문 첫 부분에도 등장하니,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상기한 것처럼 보통 왕과 패가 대조되고, 패가 '불선'과 '불충'의 화신인 것처럼 표현되는 데 비해, 순자는 '彊'이라는 개념을 추가해 개념 세 가지를 분석했습니다. '강'은 군사적으로 다른 나라를 이기기를 원하는 정치인, 또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저는 개념을 세분화해서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한다는 점에서 분명 순자가 다른 유학자들에 비해 진일보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중니」의 해설에서 설명했음에도, 다시 위에서 길게 설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춘추오패라고 해도 각자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점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의 환공은 제나라를 위해 산동의 여러 나라를 병합하기도 했지만, 그 규모가 패권주의라고 비하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 치적 역시 주로 주나라를 위해 외적을 물리치고, 주나라를 위해 제후들을 규합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차나 구천은 주나라 보다는 자기 나라의 군사적 확장에 정치의 목표가 있었죠. 특히 부차와 그 선왕인 합려의 시기에 오나라는 전략가로서 유사 이래의 중국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손자를 기용해 초나라를 말 그대로 박살내 버렸습니다. 맹자는 '覇'를 환공과 부차, 구천, 그리고 나머지 오패의 행적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외교적 맹주도 '覇'에 포함되어 있고, 군사적 '폭거'도 '覇'에 포함되어 있죠. 하지만 순자는 이 둘을 분리했습니다. 순자는 외교적으로 여러 나라를 규합해 그 맹주 자리에 앉으려 하는 것을 '覇'라고 하고, 군사적으로 다른 나라를 겸병하려는 것을 '彊'이라 했거든요.
왜 분리했을까요? 순자는 유학자 치고는 특이하게도 '覇'를 부정 일변도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王' 보다 저급의 정치 이념으로 보지만, 그렇다고 의미 없고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유효」에서 순자는 대유가 정치를 잡기만 하면 패업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覇'를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았다면 이런 말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맹자는 위나라(魏) 혜왕에게 '利' 같은 것은 바라는 기색도 내지 말라고 갈구잖아요. 순자와 맹자의 태도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즉, 순자가 '覇'를 생각하기를, 적어도 맹자가 '利'를 생각하는 만큼 싫어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覇'에서 '더 깡패 같은 면'과 '덜 깡패 같은 면'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시대적 배경입니다. 저는 순자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에 시대적인 배경이 미친 영향이 가장 크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맹자는 기원전 372년에 태어나 기원전 289년에 죽었습니다. 순자는 기원전 298년에 태어나 기원전 238년에 죽었습니다. 전국시대는 진나라(晉)가 공중분해된 기원전 453년, 또는 주나라에서 삼진(三晉) 각국을 공인한 기원전 403년에 시작되었고,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기원전 221년에 끝났습니다. 맹자는 전국시대 초, 중기를 살았습니다. 진나라(秦)가 다른 나라를 압도하기 시작한 시점이 공손앙의 변법이 시행된 때였고, 이 때의 제후는 효공이었습니다. 효공은 기원전 361년에 즉위해 기원전 338년에 죽었습니다. 바로 맹자가 살았던 시기가 이 때였죠. 전국시대 초, 중기에는 아직 진나라가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지 못했고, 오히려 위나라(魏)나 조나라, 그리고 제나라가 강성했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전국을 돌며 '설교'할 때, 맹자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태도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순자는 달랐습니다. 순자가 죽은 뒤 20년도 안 되어서 중국이 통일됩니다. 진나라가 통일할 때, 여섯 나라 중 가장 처음 합병당한 한나라(韓)가 망했을 때가 기원전 230년이었습니다. 순자가 진나라의 통일 전쟁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순자의 노년은 진나라가 여섯 나라를 합병만 못했을 뿐이지 여섯 나라를 군사적으로 압도하고 다니던 시기였으므로, 순자는 맹자처럼 여유롭게 이야기를 펼칠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진나라의 우위가 결정된 뒤, 여섯 나라는 합종하여 진나라에 맞서기도 했습니다. 합종이 형성될 때는 합종을 주도하는 나라가 항상 존재했습니다. 이것이 춘추오패와 같은 패자의 모습은 아니지만, 여러 나라가 외교적으로 뭉친다는 점을 보면 공통된다고 할 수 있죠. 순자는 이 모습과 환공의 회맹 사이의 공통점을 잡아, '覇'의 개념을 구체화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군사적인 힘으로 여섯 나라를 병탄했던 진나라는 상기했던 대로 '彊'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순자는 강, 패, 왕의 세 유형에 대해, 각각의 패착과 도리가 있음을 논증했습니다. 맹자가 왕의 정치를 '王道'라고 한 것처럼, 강도, 패도, 왕도라는 말을 쓰기도 하죠. 강국의 경우, 다른 나라를 군사력으로 함부러 공격하려 하면, 본국의 백성들은 전쟁에 지치고, 적국의 백성들은 강국을 증오하게 될 것이니, 장기적으로 강국의 편을 들게 될 사람이 없게 될 것임을 순자는 주장했습니다. 그러면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잃는 게 더 많아지겠죠. 게다가 강국의 피로가 누적되면 기회를 엿보던 다른 나라들이 틈을 보다가 강국을 공격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역사적으로 제나라의 민왕이 위왕, 선왕을 거치며 쌓아 둔 국력을 믿고 깝치다가 5개국 연합군에 박살나고 나라가 망할 뻔한 적이 있습니다.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진나라(秦)에 대해 여섯 나라가 합종한 것도 이와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순자도 제나라 민왕의 예를 들어 강국이 그런 길을 걸으면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럼 강국이 망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요? 순자는 더 강해지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천자의 명을 받들어 자신의 힘을 보전하고,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힘을 낭비하지 않으니 다른 나라가 강국을 넘볼 수 없습니다. 명분도 얻게 되죠. 이렇게 강국은 자기 위상을 보전하고, 힘을 낭비하는 것 보다 더 나은 것에 정치의 손길을 뻗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강도(彊道)입니다.
패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주장했을까요? 순자는 패국을 보고, 경작에 힘쓰고, 곳간을 채우며, 도구를 갖추고, 재능 있는 사람을 모으며, 상벌로 인재들을 바로잡는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평가가 아주 긍정적이죠? 다만 패자의 패착은 패자의 정치적 목표에서도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패자는 외교적 맹주의 자리를 원합니다. 하지만 외교적 맹주가 그냥 오는 것은 아니죠. 망해가는 나라를 돕기도 하고, 대가 끊어진 나라는 적당한 사람을 찾아 대를 다시 이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 세력권에 속한 나라들을 도와서, 그 나라를 침략하는 외적을 방어하기도 해야 하죠. 하지만, 어떤 나라가 이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 힘이 있다면, 사실 그 이상을 넘볼 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자기가 돕던 나라를 도리어 합병해 버릴 수도 있겠죠. 도와 주겠다고 해 놓고는 날름 잡아 먹어 버린다면 당연히 당사국은 물론이고, 주변 나라들도 좋아하지 않겠죠? 패국이 구축하려 하는 외교적 질서는 패국이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다른 데로 눈을 돌리지 않아야 유지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외교적 질서가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그 질서 속의 국가들이 패국의 역할을 신뢰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왕의 경우처럼, 순자가 든 예가 있습니다. 제나라의 환공이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겨서, 노나라에게서 땅을 빼앗으려 했을 때, 그 회담장에서 조말이라는 노나라 용사가 환공을 칼로 위협해 땅을 넘기는 조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패자였던 환공이 패자라는 자기의 본분을 넘어서는 행위를 하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땅을 빼앗지 않으면 노나라 입장에서는 제나라가 꼽다 한들, 그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순자는 바로 이 점을 정확히 파고 들었습니다. 패국은 자기 역할을 다 하고, 무엇 보다 다른 나라를 겸병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며, 그런 동향을 다른 나라들에게 보여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러면 천하에 이미 패업이나 왕업을 이룬 나라가 없는 한, 패국은 패국의 지위를 순조롭게 지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패도(覇道)입니다.
강국과 패국에 대해 비판한 것에 비해, 순자는 왕국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싸우지 않아도 왕자의 덕에는 천하가 복종할 것이라고 주장하죠. 왕자의 인은 세상이 숭상할 만한 것이고, 왕자의 의는 천하가 우러를 만한 것이며, 왕자의 위엄도 천하가 복종할 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하의 모든 나라가 왕자의 인 덕분에 왕자와 친근하며, 왕자의 의 덕분에 왕자를 우러러 보며, 왕자의 위엄 덕분에 왕자에게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국과 패국에 대한 순자의 체계적 논증에 비해, 왕국에 대한 설명은 다소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여기서는 순자의 '입장'을 고려해 굳이 따지지는 않겠습니다. 순자는 이것을 왕도(王道)라고 했습니다. 사실 강, 패와 함께 다룬 이 문단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바로 뒷문단에서는 왕자가 왕자일 조건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왕국에 대해서는 뒷부분을 참고하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강도, 패도, 왕도, 그리고 강국과 패국이 망하지 않을 조건, 이것들을 삼구(三具)라고 합니다. '具'는 조건을 의미합니다. 「왕제」 마지막 부분에는 이 부분의 삼구와는 별개로, '具具而王具具而霸具具而存具具而亡'로 시작되는 긴 문단이 있습니다. 이 문단에서는 왕, 패, 강에서 강이 빠지고, '王', '覇', '安存', '危殆', '滅亡'의 다섯 유형으로 군주를 나눕니다. 그리고 삼구처럼, 어떻게 하면 잘 되고, 어떻게 하면 망하는지 설명합니다. 이 부분의 글도 볼 만하긴 하지만, 일단 삼구 때와 달리 군주의 유형을 나누는 방법도 다르고, 안존, 위태, 멸망처럼, 국가의 유형으로 표상해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표현들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저는 왕, 패, 안존 위태, 멸망이라고 본문에 번역했지만, 사실 누가 '如是者危殆'를 보고 '나라를 이렇게 다스리는 놈을 위태라고 한다.'라고 하겠어요? '나라를 이렇게 다스리는 놈은 위태로워질 것이다.'라고 하겠죠. 표현이 이렇게 깔끔하지 않은 데다, 그 편의 다른 부분과 체제가 다르면 항상 생기는 의문이 있습니다. '具具而王' 이후 부분은 순자의 저작일까요? 노문초는 '具具而王' 이후의 글 뜻이 천잡하다(淺雜)고 하여, 아마 정상적인 본문으로 간주하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의견을 달았습니다. 저도 노문초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제 편 이름에 '王'이 쓰인 배경을 살펴 보았으니, '王制'가 무엇인지 직접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왕제」에는 지금까지의 어떤 편들 보다도 순자의 능력주의적인 생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기본적으로 귀족 사회입니다. 자기 영지를 갖고 있는 대부를 기준으로, 그 아래와 그 위의 계층이 분명히 나뉩니다. 당연히 관습적으로 대부 이상의 귀족들이 관직을 독점했습니다. 하지만 순자는 능력이 있다면 서인, 즉 평민의 자제라도 관직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죠. 이런 순자의 생각은, 평민들을 위해 시혜를 내려야 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었고, 능력이 있는 놈이면 사람 새끼 같지 않아도 출세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 '능력주의자'들의 의견과도 아주 달랐습니다. 어쨌거나 순자는 유학자였습니다. 유학자가 정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목표는 백성들을 교화하고 세상에 기강을 세우는 것입니다. 능력이란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재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학습하고, 체화할 수 있는 수단이자 결과가 바로 예(禮)죠. 따라서 순자의 입장에서는 전통 귀족 집안의 자제라도 예를 배우거나 행할 능력이 없는 놈이라면 관직을 줄 이유가 없는 것이고, 만약 아주 되먹지 못한 새끼라면 잡아 죽이는 것도 불사해야 합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순자가 경상과 형벌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는 점입니다.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준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당연해 보이겠으나,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치와 직위가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것처럼, 상을 주니, 벌을 주니 하는 것도 원칙은 뒷전이고, 왕 같은 통수권자가 꼴리는 대로 남발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법가에서는 상과 벌을 통해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상과 벌은 '術', 즉 통치 기술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비자》에 아주 지겹도록 등장합니다. 《사기》의 「노자한비열전」에는 이사와 한비자가 순자의 제자라고 했고, 이사와 한비자 모두 법가에 드는 사람들이니, 순자의 생각이 법가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순자는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상벌을 써야 한다고 했을까요? 기본적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 벌을 준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다만 순자는 대체로 인재를 가리고 뽑는다는 말과 상벌을 준다는 표현을 함께 씁니다. 인재를 임용하면, 상을 주어서 그 사람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못된 일을 벌이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벌을 준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이끌어 주는 데도 상을 주고, 관리들을 이끌어 가는 데도 상을 줍니다. 예를 들어, 좋은 일을 한 백성에게 상을 주면, 너도 나도 좋은 일을 하려 하겠죠?
위정자의 태도도 정치에 영향을 미칩니다. 순자는 이 점도 지적했습니다. 위정자가 너무 위엄을 앞세우고, 너그러운 면이 없다면, 사람들은 위정자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입니다. 두려우면 마음이 멀어지고, 마음이 멀어지면 결국 아무도 현재의 정치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입을 꾹 다물고만 있다면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겠죠. 하지만 위정자가 너무 너그럽고 부드러워도 문제가 생깁니다. 관용과 겸양은 물론 좋은 것이지만, 호의를 호의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꼭 깝치는 놈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군주가 유약하면, 군주는 목소리가 큰 신하들에 뒤로 밀려 군주노릇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위엄도 적당해야 하고, 관용도 적당해야 합니다. 「왕제」에 중용 같은 말이 나오지는 않지만, 중용이 지켜지지 않을 때, 즉 위엄과 관용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의 폐단을 순자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위정자는 정치 행위나 법리를 정할 때 충분히 고민하여 살피지 못한 부분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고, 편파적이지 않게, 즉 공평하게 정치를 펴 나가야 합니다. 모두 우리가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위정자가 정치를 제대로 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비십이자」에서 순자는 열두 학자들을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다른 편들을 보아도 순자의 어조는 견고하면 견고했지, 유약하지 않죠. 정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수레를 끄는 말이 놀라면 수레를 몰던 놈이 다치는 법입니다. 정치의 목적은 백성들을 교화하고 세상의 기강을 잡는 것이라고 했었죠. 위정자는 백성들을 교화해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부가 말을 모는데, 그 말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제대로 몰지 못하거나, 어떤 잘못을 하면, 말이 놀라 날뛰는 것은 날뛰는 것이거니와, 결국 정치의 당사자인 자신도 위험해지게 됩니다. 또한, 백성은 물과 같고, 군주는 배와 같으니, 물이 험해지면 배가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도 인용합니다. 순자는 정치인들에게 모가지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정치를 잘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맹자》에도 나옵니다. 「양혜왕 하」에서 맹자는 제나라의 선왕과 대화하며, 탕이 걸을 죽이고, 무왕이 주를 죽인 것을 보고 잔적(殘賊) 또는 필부 한 명(一夫)을 죽였을 뿐, 신하가 왕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조와 의도가 순자와 비슷하죠? 혹자는 이것을 역성혁명론이라고 하며 맹자를 하늘 만큼 띄워 주지만, 대화의 맥락을 보면 맹자가 선왕에게 모가지 날아가지 않으려면 정치를 잘 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일 뿐, 왕조의 교체를 상정하고 하는 말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정치를 잘 하는 것이 왕의 본분인데, 걸과 주는 그 본분을 지키지 못했으니 왕이라고 부를 가치도 없고, 너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정치를 잘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치를 잘한다는 의미가 순자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동일합니다. 사람들은 「왕제」의 이 부분을 가지고 '君舟民水'라는 말까지 만들어 되새기곤 합니다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역성혁명 운운하는 것은 본의를 아주 비약했다고 느낍니다. 순자와 맹자 모두에게 말입니다. 다만 순자와 맹자 모두 정치에 대해 위정자가 져야 할 책임이 이 만큼 크다고 주장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왕이 왕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 같은 게 있을까요? 순자는 세 가지를 듭니다. 이것을 삼절(三節)이라 합니다. 하나는 군주가 스스로 편안하려면 정치를 공평하게 보고,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은 군주가 명예를 얻고자 한다면, 예를 받들고, 선비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은 군주가 공적과 명성을 쌓고자 한다면, 현명한 사람을 숭상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름이 삼절이지, 그 내용은 그 동안 순자가 해 온 이야기의 연장입니다. 아주 새로운 설은 아닙니다. 만약 왕이 삼절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유학자에게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 보살피며, 세상에 올바른 기강을 세우는 것입니다. 즉, 정치의 수혜자는 응당 백성들이 되어야 하는데,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면, 결국 귀족들의 배만 불리고,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지겠죠. 이런 양상은 군주가 재물을 긁어 모으는 데 관심이 있을 때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순자는 위나라(衛)의 성후와 사공의 예를 들어 이런 점을 비판합니다. 올바른 정치란,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교화를 바르게 펴고, 백성들에게 예를 베푸는 것입니다. 성후와 사공은 백성들에게서 재물을 취렴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위나라에서는 귀족과 제후는 배가 터질 듯 불러 가는데, 백성들은 점점 가난해져 갔습니다. 순자는 이런 것을 상일(上溢)과 하루(下漏)라고 했습니다. 상일은 위로 넘친다는 말이고, 하루는 아래로 샌다는 말입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상일, 하루 같은 것들을 무슨 능력이 표현된 덕목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좋은 결과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상의 몇 가지는 순자가 간접적으로 '王制'를 기술한 것들입니다. 「왕제」에는 아주 직접적인 기술도 등장합니다. 순자는 왕자의 됨됨이(人), 왕자의 규범(制), 왕자의 정치(論), 왕자의 법(法)으로 나누어 왕자의 제도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네 가지 모두 대체로 뻔한 이야기들이고, 지금까지 순자가 해 온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는 결과이기 때문에, 각각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직접 읽어 보는 게 훨씬 낫습니다. 예컨대 후왕 같은 개념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충분히 설명했으니까요. 다만 그래도 짚어 볼 만한 점들은 있습니다.
하나는 순자가 규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분제를 옹호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신분제에 대한 기술은 「왕제」 앞부분에 이미 나옵니다. 순자는 《서》의 「여형」에서 '維齊非齊'라는 말을 인용하며 신분제를 설명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면, 즉 신분이 모두 같다면,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압도할 수 없게 됩니다. 누가 누구를 부리거나, 섬기거나 하지 못하게 되겠죠. 그런데 사람들의 권세와 지위가 같고,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모두 같다면, 사람들이 써야 할 물자는 모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분쟁이 생기고, 전쟁이 일어나며, 전쟁 끝엔 모두가 빈궁해지고 맙니다. 순자는 이 점을 들어, 옛 선왕들이 이런 분쟁을 싫어했기 때문에 신분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빈부귀천의 차이가 있게 되었고,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다스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르게 보면, 신분이 있고, 그로 인해 질서가 구축된 세상도 어떤 의미에서는 평등하다고(齊) 할 수 있으니, 이런 평등함은 평등하지 않은 신분 체계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원전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지만, 상기한 '維齊非齊'를 인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신분제에 대한 순자의 설명 방식은 아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상을 설명하고 그것을 순자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에 맞추기에는 아주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순자가 신분제를 선왕의 작품이라고 한 것처럼, 순자는 신분 질서가 일종의 천명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이것 역시 '王制', 특히 왕자의 규범에 포함되었습니다.
둘은 순자가 왕자의 규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복고주의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입니다. 신분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순자는 아성(雅聲)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 버려야 하고, 그림은 구문(舊文)이 아닌 것을 모두 없애 버려야 하며, 계용은 구기(舊器)가 아닌 것을 전부 부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런 것을 복고(復古)라고 부르죠. 이 복고는 우리가 복고풍이라고 할 때의 복고와 같습니다. 옛날로 되돌린다는 말이죠. 복고의 의미에 착안한다면, 소리, 그림, 계용에서, 부수지 말아야 할 것, 즉 아성, 구문, 계용이라는 것은 모두 옛날의 소리, 그림, 계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 주나라의, 혹은 주나라 법도에 맞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제가 의뭉스러운 점은, 순자가 후왕론을 주장할 때의 태도와 이 부분에서의 '복고'적 태도가 아주 상이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비상」에서 순자는 후왕을 주장하는 것이, 선왕들의 업적을 추적하는 것이 시간적 장벽 때문에 힘들기 때문에 선왕이 족적이 가장 잘 드러난 존재인 후왕을 탐구하여 선왕의 도리를 이어 받는 것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순자의 근본 정신이 선왕에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한계, 시간적 한계 때문에 선왕을 직접 따르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았던 통찰력 있는 모습이, 「왕제」에서 복고를 무비판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모습과 같아 보이지는 않거든요.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후왕에 선왕의 족적이 드러나 있다고 하는 것도, 후왕이 선왕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후왕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는 것이죠. 그럼 후왕론의 초점은 사실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있다고 할 수 있고, 그럼 후왕론 자체도 복고주의적 시각의 연장으로 이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석연치 않네요.
셋은 왕자의 정치를 논하면서 요행으로 살아 가는 백성들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문에서는 '民無幸生'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점은 순자의 핵심 주장에 대한 비판은 아니고, 마찬가지로 아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 생각도 아닙니다. 요행으로 명맥을 잇는다는 것은, 일을 하지 않고 복지 제도에서 나오는 식량과 뗄나무로 살아 간다는 의미입니다. 《장자 내편》의 「인간세」에는 지리소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지리소는 턱이 배꼽 아래에 있고, 어깨는 머리 보다 높으며, 오장은 위에 붙어 있는 등, 아주 흉측하고 이상하게 생겼습니다. 장애인이므로 지리소는 징집되지 않았고, 노역에 동원되지도 않았으며, 나라에서 식량과 뗄나무로 시혜를 베풀 때에는 언제나 앞장서서 받아 왔다고 합니다. 장자가 지리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리소의 형상이 온전치 못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살아 가는 데 도움을 받는다, 즉 쓸모 없다고 여기는 특성이 오히려 쓸모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순자의 입장에서는 지리소야말로 '요행으로 살아 가는 백성'의 표상과도 같죠. 순자는 「왕제」 가장 처음에도 능력이 있어야 먹고 산다는 점을 역설했으니까요. 순자는 이런 사람이 없이, 모든 백성들이 자기 본분을 다 하며 살아가는 것이 건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조정에 있는 귀족들 역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운으로 그 순간만 넘기고 자기 직위를 유지하는 것은 아주 불건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건, 이 주제는 순자나 장자가 장애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한 결과라고 할 수는 없으며, 당시 철학자, 정치인들도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던 사례라고 보고 지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본문 주제와는 유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王制'라는 주제에 포함시킬 수 있을 만한 내용도 있습니다. 하나는 군(群)에 대한 순자의 논변입니다. '群'은 무리지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넓게 보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군집이나 사회라고 할 수 있죠. 순자는 군주를 두고, 이런 무리를 잘 이끌고, 잘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재밌는 점은 순자가 사람들이 사회를 이뤄 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고찰했다는 점입니다. 소나 말은 사람 보다 뛰어난 점이 있지만, 결국 사람은 소와 말을 잡아서 부려 먹습니다. 왜 그럴까요? 순자는 사람들이 서로 무리를 지을 수 있고, 소와 말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우리가 슬기로운 생활에서 배웠던 '사실'이죠? 그럼 사람은 어떻게 서로 무리를 지을 수 있을까요? 순자는 무리를 이룰 명분을 이끌어내고, 그 명분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명분을 세우고, 이행할 수 있는 걸까요? 순자는 의(義)를 사람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의 덕분에 사람들이 단결하고, 단결해서 동물들을 무찌르고, 집구석에서 편하게 살게 된 것이죠. 사람들이 이렇게 무리를 지으면, 무리를 이끌어 갈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바로 그 사람이 군주입니다. 무리를 지었어도, 무리는 언제나 무너질 수 있습니다. 군주는 무리의 명분이 타당하도록 하여 무리가 와해되지 않도록 하고, 무리의 구성원들이 자기 역할에 모두 충실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물론 백성들을 교화하고 이끌어 주며, 각자에게 타당한 직분을 준다는 군주의 역할은 왕자의 역할과 같고, 조금 어중간하긴 해도 이 내용 역시 왕제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群'에 대한 순자의 논변을 살펴 보면, 우리는 나중에 나올 성악이나, 이미 수차례 언급된 능력주의 등, 순자의 사상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이념들이 단순한 직관이나 어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순자가 자신의 주변을 깊게 통찰한 결과라는 점 역시 알 수 있습니다. 순자가 예와 의에 대해서 「권학」이나 「수신」에서 설명할 때, 누가 그 설들이 인간의 원시적 사회 구성 과정에서 사회과학적으로 도출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둘은 '群' 바로 다음에 나오는 성왕의 제도(聖王之制)입니다. 성왕은 이상적인 왕이고, 그러면 왕자니까, 성왕의 제도는 곧 왕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왕제」 일반과 좀 다릅니다. 여기 나오는 성왕의 제도는, 풀과 꽃이 충분히 자라기 전까지는 채집하지 않고, 각종 물고기나 수중생물들이 충분히 자라기 전까지는 채집하지 않으며, 시기에 따라 농삿일을 돌보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충분히 자라기 전에 채집하면 상품성이나 실용성도 떨어질뿐만 아니라 다음 번에 수확할 것을 '기대 이하'의 질과 양으로 미리 당겨 쓰게 되는 거잖아요? 순자는 이런 것들까지 제어하고 고려할 수 있는 것을 위정자의 역할 범위로 상정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잘하고, 쓸 데 없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국가의 재정이 좌우될 안건이고, 백성의 식량 수급이 달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듯, 위정자도 백성들이 항상 '먹고 살 수' 있도록 조절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왕의 자기 역할을 한다면, 성왕의 통치 아래 있는 백성들은 모두 성왕의 시혜(用)를 받게 됩니다. 성왕이 채집을 통제하고, 농사를 권면했기 때문에 백성은 모자라지 않게 먹고, 국가의 재물이 부족하지 않아 백성들이 쓸 물건들도 모자람 없이 순환하게 됩니다. 이것을 위해 성왕이 위와 같이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따라서 성인이란, 즉 왕자란, 백성들에게 바라지 않고 한결 같이 백성들에게 오로지 베풀기만 한다고 합니다. 조금 결이 달라 보이긴 하지만, 이 역시 왕제라고 할 만합니다.
마지막으로, 셋은 직위와 그 역할을 기술해 놓은 것입니다. 순자는 「왕제」에 여러 관직들의 이름과 그 역할을 기술해 두었습니다. 순자가 열거해 둔 관직은 재작, 사도, 사마, 태사, 사공, 치전, 우사, 향사, 공사, 구무, 파수, 치시, 사구, 총재, 벽공, 천왕입니다. 이 중 벽공은 제후를 의미하고, 천왕은 천자, 즉 왕을 의미합니다. 사도, 사마, 사공, 태사 같은 직책은 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재작은 그 정체를 아주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진나라(秦)에 열후를 응대하는 관직으로 주작중위(主爵中尉)라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순자가 기술해 둔 재작의 역할도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었으니, 아마 고대의 재작이 진나라 때는 주작중위 같은 이름으로 바뀌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순자의 기술을 고려할 때, 순자가 나열한 관직들은 주나라 때의 것으로 보입니다. 주나라의 관직 제도가 제후들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각자의 사정에 맞게, 혹은 원래 주나라의 제후국이 아니었더라도 서로서로 모방해서 제도가 변천했을 겁니다. 그 중 결과적으로 살아 남은 것은 진나라 제도였습니다. 서한 초에 국가의 전반적인 제도를 정비할 때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이 숙손통이었습니다. 숙손통은 진나라에서 박사를 지냈던 사람이었고, 칠웅 중 국체를 '온전히' 남긴 나라가 진나라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나라의 제도는 진나라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자가 주나라 제도를 「왕제」에 적어 둔 것은, 곧 순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제도가 주나라 제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나라에 대한 '복고'는 순자뿐만 아니라 모든 선진 유학자들의 꿈이었습니다. 당장 시조인 공자부터 주나라로 돌아가자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니까요. 이 기술은 어쩌면, 앞에서 순자가 왕자의 규범에 대해 기술할 때 취했던 복고주의적 태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술한 것처럼, 후왕의 정치를 본받자는 것도, 후왕이 주나라처럼 잘 통치한다는 것을 전제한 말일 테니까요.
이제 정리해 봅시다. 「왕제」는 순자가 지금까지의 편들 중 제도와 정치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기술한 편입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왕과 패의 이원적 구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패와 강을 구별하여, 왕, 패, 강으로 국가의 흥망성쇠를 분석한 글이기도 합니다. 순자가 생각하는 '王制'는, 맥락을 살필 때 주나라의 제도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실질적인 지향점은 백성들이 잘 살도록 정치를 잘 펴고, 예와 의로써 세상에 기강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순자의 태도는 맹자나 공자 같은 선대 유학자들 보다 훨씬 실용적이고, 능력주의적인 측면이 두드러집니다. 또한, 상이나 벌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기도 했죠. 이런 것은 유가 보다는 법가에 더 가까워 보이고, 실제로 상과 벌은 법가의 '術'에 해당하는 아주 중요한 기법이지만, 순자가 이런 것을 주장한 것은 순자가 '이단'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순자가 살았던 시대가 이전 보다 훨씬 급박하고, 험악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