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시안TV 2025. 2. 1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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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인본 자료집은 제가 공부하면서 모은 영인본 자료들을 올려 두려고 만든 게시판입니다.

* 판본의 이름이나 출판 연대는 아는 대로 기재하겠으나, 정보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기재하지 못합니다.

* 영인본들의 출처는 인터넷입니다. 대학교 도서관도 있고, 각종 아카이브 사이트들도 있습니다. 사이트 목록을 밝히지 못하는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論語》 주석서 중 가장 오래된 책은 아마 하안(何晏)의 《論語集解》일 것입니다. 하안은 조위(曹魏) 사람입니다. 하안 이전에도 물론 마융(馬融), 정현(鄭玄)처럼 《論語》에 주석을 남긴 사람은 여럿 있지만, 모두 실전되었습니다. 다행히도 하안이 그 주석들을 취집하여, 지금 일부나마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하안 이후에는 소량(蕭梁)의 황간(皇侃)이 《論語集解義疏》를 지었습니다. 하안의 《論語集解》에 소(疏)를 달았던 것이죠. 그래서 《論語集解義疏》를 보면, 《論語集解》에 들어 있는 주석이 먼저 제시되고, 그 이후에 황간이 풀이한 소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論語集解義疏》는 《論語義疏》, 《義疏》, 《皇侃本》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論語集解義疏》에는 남북조 시기 학자들의 해석이 수록되어 있어, 그 점 역시 가치가 있습니다.

 

당나라 때엔 한유(韓愈)와 그 사위인 이고(李翶)가 《論語筆解》를 지었습니다. 나름 참신한 설들이 있어, 읽어 볼 만합니다. 위작이라는 설도 있던데, 진위는 모르겠습니다.

 

이 이후에는 조송(趙宋) 때 《論語註疏》가 있습니다. 이는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중 하나입니다. 《論語》의 경우, 하안의 주석에다, 형병(邢昺)이 소(疏)를 달았습니다. 《義疏》와 《註疏》를 비교하였을 때, 《註疏》는 《義疏》와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주 같지는 않습니다.

 

이후에는 역시 조송 때, 주희(朱熹)가 《論語集註》를 저술했습니다. 주희는 북송 시기 선배 성리학자들과, 자기 친구들의 의견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글자 해석의 경우, 고래 주석서들의 의견을 베꼈으나 출처를 밝히지 않았고, 또 의미 해석의 경우, 제도나 풍습을 고증하기 보다는 마음가짐이나 마음 작용, 태도의 문제로 《論語》의 주제를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절의 승려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청나라 중기에, 유보남(劉寶楠), 유공면(劉恭冕) 부자가 저술한 《論語正義》가 있습니다. 유보남과 유공면은 《論語集解》에서부터 《論語集註》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석서를 망라해 분석하였고, 당대의 학설인 청나라 고증학자들의 의견 역시 인용하였습니다. 게다가 유보남과 유공면 자신들도 《說文解字》나 《爾雅》 같은 자서는 물론, 《周禮》, 《儀禮》 등의 예서, 각종 서적들을 폭넓게 참고하여, 글자와 제도, 풍속을 고증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論語》 주석서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제 식견이 일천하여, 더 기술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중, 이 게시판에 올릴 책은 바로 황간의 《論語集解義疏》입니다.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머리에 「提要」가 있습니다. 사고전서 편집자들의 서문입니다. 기윤(紀昀), 육석웅(陸錫熊), 손사의(孫士毅), 육비지(陸費墀)는 모두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황간의 서(序)가, 그리고 그 뒤에는 하안의 서(敍)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부터 본문이 시작됩니다.

 

「提要」 말미에 보면, 건륭(乾隆) 46년 11월에 교정하여 바쳤다는 말이 있습니다. 건륭 46년은 1781년입니다. 이 때 인쇄되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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