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 번외편 - 소학제사(주희)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小學》은 가벼운 마음으로 번역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원문은 학민문화사에서 나온 영인본을 참고하기도 하고, 또 동양고전종합DB에 업로드되어 있는 글을 참고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현토는 뺐습니다.
* 《小學》은 朱熹와 劉子澄이 여러 글들을 짜깁기하여 만든 책입니다. 필요할 때는 그 글의 원전에 대한 주석을 참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번역한 만큼, 주석을 달 때 《莊子》나 《荀子》에서처럼 복잡한 방식은 가급적 피했습니다.
* 《小學》에는 여러 사람이 주석을 달았습니다. 何士信이 《小學集成》을, 吳訥이 《小學集解》를, 陳祚가 《小學集解正誤》를, 陳選이 《小學增註》를, 程愈가 《小學集說》을 지었습니다. 모두 明代 학자들입니다. 朝鮮의 李珥는 이 책들을 참고하여 《小學諸家集註》를 저술했습니다. 《小學諸家集註》에는 상기된 주석서들의 내용과, 李珥 본인의 의견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본 번역에서는 이 《小學諸家集註》를 번역합니다.
* 《괄호》는 책이나 문집 이름을 뜻합니다. 《논어》, 《장자》, 《순자》, 《한비자》, 《문선》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판본을 표기할 때도 《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足利本》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단편 산문이나 시, 편 이름을 뜻합니다. 「학이」, 「위정」, 「벽옹」, 「子虛賦」처럼 표기하였습니다. ≪괄호≫는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로 표기할 수 없는 한자를 쓸 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信이라면 ≪亻言≫처럼 표기했습니다.
* 《小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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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5년 2월 24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小學題辭>, 朱熹
<집설>
饒氏曰/小學者/小子之學也//題辭者/標題書首之辭也
饒氏가 말했다. 小學이라는 것은 아이들의 공부라는 뜻이다. 題辭라는 것은 표제로, 글의 첫머리에 오는 말이라는 뜻이다.
<소학제사>
元亨利貞/天道之常/仁義禮智/人性之綱
원형리정은 천도의 법칙이요, 인의예지는 인성의 벼리로다.
** 元亨利貞 : 《易》에 나오는 말들이다.
** 常 : ‘법칙’이다.
<정오>
元者/生物之始//亨者/生物之通//利者/生物之遂//貞者/生物之成//四者謂之天道/天理自然之本體也//亘萬世而不易/故曰常//仁者/愛之理//義者/宜之理//禮者/恭之理//智者/別之理//四者謂之人性/人心所具之天理也//統萬善而不遺/故曰綱
元은 살아 있는 것들의 시작하는 바이다. 亨은 살아 있는 것들이 통하는 바이다. 利는 살아 있는 것들이 좇는 바이다. 貞은 살아 있는 것들이 이루는 바이다. 이 네 가지를 天道라고 하였는데, 天理와 自然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만세에 뻗쳐 바뀌지 않으니, 그래서 常이라고 하였다. 仁은 사랑의 이치다. 義는 마땅함의 이치다. 禮는 공경의 이치다. 智는 분별의 이치다. 이 네 가지를 人性이라고 하였는데, 天理에서 사람의 마음이 갖추고 있는 바이기 때문이다. 온갖 선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잃지 않으니, 그래서 綱이라고 하였다.
** 遺 : ‘잃다’는 뜻이다.
[李珥] 元/於時爲春/於人爲仁//亨/於時爲夏/於人爲禮//利/於時爲秋/於人爲義//貞/於時爲冬/於人爲智
李珥 주 : 元은 절기에 대해서는 봄이 되고, 사람에 대해서는 仁이 된다. 亨은 절기에 대해서는 여름이 되고, 사람에 대해서는 禮가 된다. 利는 절기에 대해서는 가을이 되고, 사람에 대해서는 義가 된다. 貞은 절기에 대해서는 겨울이 되고, 사람에 대해서는 智가 된다.
<집설>
此一節言天道流行賦於人而爲性也
이 한 절에서는 천도가 작용하여, 사람에게 주어지면 性이 된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 賦 : ‘주다’는 뜻이다.
<소학제사>
凡此厥初無有不善/藹然四端隨感而見
만물은 그 처음에는 선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으니, 구름이 피어나듯 사단이 느끼는 바을 따라 나타났다.
** 凡此 : ‘이 모든 것들’, 곧 ‘만물’이다.
** 厥 : ‘그’라는 뜻이다.
** 藹然 : 아마 ‘구름이 피어나는 모습’을 이르는 듯하다.
<집설>
饒氏曰/此者/指上文仁義禮智之性也//厥初/謂本然也//藹然/衆盛貌//端/緖也//孟子曰/惻隱之心/仁之端也//羞惡之心/義之端也//辭讓之心/禮之端也//是非之心/智之端也///感者/自外而動於內也//見者/自內而形於外也
饒氏가 말했다. 이 말은 앞의 글에 나왔던 仁, 義, 禮, 智를 가리킨다. 厥初는 본연의 상태를 이른다. 藹然은 만물이 흥성하는 모습이다. 端은 실마리다. 《孟子》에 ‘불쌍해 하는 마음은 仁의 단서요,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義의 단서요, 사양하는 마음은 禮의 단서요,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智의 단서다’라는 말이 있다. 感은 밖으로부터 안을 움직이는 것이다. 見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 孟子曰 : 인용문은 《孟子》 「公孫丑 上」에 나온다. 「告子 上」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此言人性其初本善/是以四者之善端/藹藹然隨其物之所感動而形見也
이 문장에서는 사람의 性이 처음에는 본래 선하였으니, 이에 네 가지 선의 단서들이 흥성하듯 그 物이 느끼는 바를 따라 움직이고, 형체가 나타났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집설>
此一節言性發而爲情也
이 한 절에서는 性이 발현하여 情이 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소학제사>
愛親敬兄/忠君弟長/是曰秉彝/有順無彊
부모를 사랑하고, 형에게 공경하며, 군주에게 충성하고, 어른을 따르는 것, 이를 병이(秉彝)라고 하는데, 따르게 될 뿐 강제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집설>
饒氏曰/忠者/盡己之謂//弟/順也//秉/執也//彝/常也
饒氏가 말했다. 忠은 자신을 다한다는 뜻이다. 弟는 따르다는 뜻이다. 秉은 잡다는 뜻이다. 彝는 언제나 그렇다는 뜻이다.
言愛親敬兄忠君弟長/此四者乃人所秉執之常性/皆出於自然而非勉彊爲之也
부모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며, 군주에게 충성하고, 어른을 따르는 일, 이 네 가지는 사람이 품고 있는, 언제나 그러한 性이니, 모두 자연스럽게 나올 뿐, 강제로 시켜서 그렇게 하는 바가 아니라는 뜻이다.
<집설>
此一節言性之見於行也
이 한 절에서는 性이 행동거지로 드러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소학제사>
惟聖性者浩浩/其天不加毫末/萬善足焉
오직 성인의 성품만이 넓디넓으니, 그 천성에 털 끝 하나 더하지 않아도, 온갖 선이 충족되도다.
** 浩浩 : ‘드넓은 모습’이다.
** 天 : 아마 ‘천성’을 듯하는 말 같다.
<집설>
饒氏曰/惟/語辭//浩浩/廣大貌//天/卽理也//毫末/言至微也
饒氏가 말했다. 惟는 어조사다. 浩浩는 드넓은 모양이다. 天은 곧 이치다. 毫末은 아주 미세한 것을 이른다.
此言聖人無氣稟物欲之累/天性渾全/浩浩然廣大/與天爲一/不待增加毫末/而萬善自足/無少欠缺也
이 글에서는, 성인이 氣稟이나 물욕 같은 속박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 천성은 뒤섞여 온전하고, 넓디넓듯 광대하니, 하늘의 이치와 하나가 되어, 털 끝 만큼도 더하지 않아도 온갖 善이 충족되며, [그 자체로] 조금도 흠결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 累 : ‘속박’이다.
<집설>
此一節言聖人之盡其性也
이 절에서는 성인이 자신의 性을 다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소학제사>
衆人蚩蚩/物欲交蔽/乃頹其綱/安此暴棄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어, [그 성품이] 물욕에 서로 가려지니, 이에 자신의 벼리를 무너뜨리고, 이처럼 자포자기한 상태에 안주하고 만다.
** 交 : ‘서로’다.
** 頹 : ‘무너지다’, ‘쇠퇴하다’는 말이다.
** 安 : ‘안주하다’는 말이다.
** 此 : 若此와 같다. ‘이처럼’이다.
** 暴棄 : 自暴自棄와 같다.
<집설>
饒氏曰/衆人/凡民//蚩蚩/無知之貌//物欲/謂凡聲色臭味之欲也//交/互也//蔽/遮也//暴/害也
饒氏가 말했다. 衆人은 보통 사람들이다. 蚩蚩는 무지한 모습이다. 物欲은 聲, 色, 臭, 味에 대한 일반적인 욕구를 이른다. 交는 서로라는 뜻이다. 蔽는 가려지다는 뜻이다. 暴은 해치다는 뜻이다.
此言衆人氣稟昏愚/物欲交蔽/是以頹墜其仁義禮智之綱/而安於自暴自棄也
이 글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氣稟이 어리석어, [본래의 품성이] 물욕에 서로 가려지는데, 이에 그 仁, 義, 禮, 智의 벼리를 무너뜨리고, 자포자기한 상태에 안주하고 만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집설>
此一節言衆人之汩其性也
이 절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性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 汩 : ‘어지럽히다’는 뜻이다.
<소학제사>
惟聖斯惻/建學立師/以培其根/以達其支
다만 성인들이 [이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학교와 스승을 세우고, 이로써 [사람들의] 뿌리를 길렀으며, 가지도 성장시켰다.
** 斯 : 의미 없는 조사 같다.
** 學 : ‘학교’다.
<집설>
饒氏曰/斯/語辭
요씨가 말했다. 斯는 어조사다.
此言聖人憫人安於暴棄/故爲建學立師以敎之/使之養其仁義禮智之性/如培壅木之根本/充其惻隱羞惡辭讓是非之端/與夫愛親敬兄忠君弟長之道/如發達木之支條也
이 글에서는 성인이 사람들이 자포자기한 상태에 안주하는 꼴을 불쌍하게 생각하였기에, 학교와 스승을 세워서 사람들을 가르쳤고, 나무의 뿌리를 가꾸듯 사람들이 仁, 義, 禮, 智 같은 性을 길러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나무의 가지들을 성장시키듯 [사람들에게] 惻隱, 羞惡, 辭讓, 是非의 실마리와, 부모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며,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고, 어른을 따르는 방법을 채워 주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 憫 : ‘불쌍하다고 생각하다’는 말이다.
** 培壅 : ‘기르다’, ‘가꾸다’, ‘양성하다’는 말이다.
** 與夫의 夫 : 아마 의미 없는 조사 같다.
<집설>
此一節言聖人興學設敎之意
이 절에서는 성인이 학교를 설치한 속뜻을 설명하고 있다.
<소학제사>
小學之方/灑掃應對/入孝出恭/動罔或悖/行有餘力/誦詩讀書/詠歌舞蹈/思罔或逾
소학에서 가르쳤던 내용은 물을 뿌리고, [바닥을] 쓸며, [사람들을] 응대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으로] 나와서는 공손하게 행동하며, 행동거지에는 혹시라도 잘못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행동에 여력이 있다면, 《詩》를 외우고, 《書》를 읽으며, 노래를 읊고, 춤을 추며, 생각에 혹시라도 지나친 점이 없도록 하였다.
** 方 : 아마 ‘도리’일 것이다. 가르쳤던 내용을 이른다.
** 罔 : ‘없다’는 뜻이다. 無와 같다.
** 逾 : 아마 ‘지나치다’는 말 같다.
<집해>
罔/無也//悖/戾也//餘力/猶言暇日//手曰舞/足曰蹈//詠歌舞蹈/皆學樂之事//逾/越也
罔은 없다는 뜻이다. 悖는 어그러지다는 뜻이다. 餘力은 한가한 날이라는 말과 같다. 손으로 하는 것을 舞라고 하고, 발로 하는 것을 蹈라고 한다. 詠, 歌, 舞, 蹈는 모두 음악을 배우는 행위다. 逾는 넘다는 뜻이다.
<증주>
方/法也
方은 방법이다.
饒氏曰/此言小學之方/必使學者謹夫灑掃應對之節/入則愛其親/出則敬其長/凡所動作/無或悖戾乎此也//行此數者而有餘力/則誦詩讀書/詠歌以習樂之聲/舞蹈以習樂之容/凡所思慮無或逾越乎此也
饒氏가 말했다. 이 글에서는 소학에서 가르치는 방식이 꼭, 학생이 물을 뿌리고 바닥을 쓸며, 사람들에게 응대한 절도를 삼가 익히게 하고, 들어가면 자기 부모를 사랑하고, 나오면 어른에게 공경하게 하며, 모든 동작들에 혹시라도 잘못이 없도록 하는 것이요, 이를 여러 차례 실천하고도 여력이 있다면, 《詩》를 외우고, 《書》를 읽게 하며,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음악의 소리를 익히고, 춤을 추게 함으로써 음악의 형태를 익히게 하며, 모든 생각에 혹시라도 지나친 점이 없도록 해 주는 것이다.
** 乎此 : 無或悖戾乎此也와 無或逾越乎此也에서 乎此는 왜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군말일까.
<집설>
此一節言小學之敎
이 절에서는 소학의 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소학제사>
窮理修身/斯學之大/明命赫然罔有內外/德崇業廣/乃復其初//昔非不足/今豈有餘
이치를 궁구하고, 자신을 수양하니, 이것이 학문의 요체로다. 천명을 밝혀서 환하게 안팎의 구분을 없애면, 덕은 높아지고, 공업은 넓어질 것이니, 이에 처음의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품성의 경우,] 옛날에도 부족하지 않았는데, 지금이라고 어찌 남는 바가 있겠느냐.
** 大 : ‘요체’, ‘요점’이다.
<집해>
饒氏曰/明命/卽天之所賦於人而人之所得以爲性者也//赫然/明盛貌//德者/道之得於內者也//業者/功之成於外者也//復/還也//初/謂本然也
饒氏가 말했다. 明命이라는 말은 곧 하늘이 사람에게 내려 준 바를 사람이 얻으면 性이 된다는 뜻이다. 赫然 밝고 성한 모습이다. 德은 道가 내면에 체득된 바이다. 業은 공업이 외면에서 이루어진 바이다. 復은 되돌리다는 뜻이다. 初 본연적 상태를 이른다.
此言格物致知以窮究其理/誠意正心以修治其身/此乃大學之道也//然天之明命/赫然昭著/無有內外之間/學者誠能從事於大學/使物格知至意誠心正身修/而德之積於內者/極乎崇高/業之施於外者/極乎廣博/則有以復其性之本然矣//昔日之安於暴棄也/此性固非不足/今日之德崇業廣也/此性亦非有餘//但昔爲氣稟物欲之所蔽/今則復其本然耳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설명하고 있다. 만물을 궁구하고, 식견을 지극하게 넓혀서 그 이치를 탐구하고, 뜻을 신실하게 먹고, 마음을 바로잡아서 자신을 수양하는 것, 이것이 바로 大學의 도리다. 하늘의 위대한 명이 환하게 밝혀진다면, 안팎의 구분은 사라질 것이요, 배우는 사람들은 진정 大學에서 해야 할 공부를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니, 物이 탐구되고, 식견이 지극해지며, 뜻은 신실해지고, 마음은 바로잡히며, 자신은 수양되게 한다면, 덕은 내면에 쌓여서 지극히 높아질 것이요, 공업은 겉으로 드러나 지극히 드넓어질 것인 즉, 본연적인 性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옛날 자포자기한 상태에 안주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진정 性이 부족하지는 않은 상태요, 지금 덕과 공업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 역시 性이 남는 상태는 아니니, 다만 옛날에 氣稟과 物欲에 가려진 바 때문에, 지금 본연적 상태를 회복하는 바일 뿐인 것이다.
<집설>
此一節言大學之敎
이 절에서는 大學의 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소학제사>
世遠人亡/經殘敎弛/蒙養弗端/長益浮靡/鄕無善俗/世乏良材/利欲紛挐/異言喧豗
[그러나] 그 시대는 멀어졌고, 성인은 죽었으며, 경전들은 훼손되고, 교육은 해이해졌다. 아이들은 올바르지 않은 소양을 기르고, 어른들은 더욱 겉치레만 해 댄다. 향촌에는 좋은 풍속이 없고, 세상에는 좋은 인재가 적다. 이익에 대한 욕심은 어지럽게 일어나고, 이단의 설들만 떠들썩하다.
** 端 : ‘올바르다’는 말이다.
** 紛挐 : ‘어지럽다’, ‘뒤엉키다’는 말이다.
** 異 : 아마 ‘이단’을 가리키는 말 같다.
** 喧豗 : ‘떠들석하다’는 말이다.
<집해>
饒氏曰/人謂聖人//經/六經也//端/正也//挐/牽引也//豗/相擊也
饒氏가 말했다. 人은 聖人을 이른다. 經은 六經을 이른다. 端은 올바르다는 뜻이다. 挐는 끌다는 뜻이다. 豗은 서로 부딪친다는 뜻이다.
此言自前世旣遠/聖人旣沒/六經殘缺/而敎法亦廢弛矣//小學之敎廢/則自童蒙之時/而養之不以其正//大學之敎廢/則至年長而所習/日益輕浮華靡//是以鄕無淳厚之習俗/世無粹美之人材/但見利欲之習紛然而相牽引/異端之言喧然而相攻擊也
이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설명하고 있다. 옛 시대는 이미 멀어졌고, 성인은 이미 죽었는데, 이 때부터 六經은 훼손되었고, 교육 방법 역시 무너졌다. 小學의 교육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올바르지 못한 소양을 기르게 되었다. 大學의 교육이 무너지자, [사람들이] 어른이 되기까지 익힌 습속들이 나날이 경박하고 실속이 없어졌다. 이러한 까닭에 향촌에는 도타운 습속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세속에는 훌륭한 인재가 없게 되었다. 다만 잇속만 어지럽게 일어나 서로를 끌어 당기고, 이단의 설들만 떠들썩하게 일어나 서로를 공격해 댈 뿐이다.
<집설>
此一節言後世敎學不明之害
이 절에서는 후세의 교육이 훌륭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폐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소학제사>
幸玆秉彝極天罔墜/爰輯舊聞/庶覺來裔//嗟嗟小子敬受此書/匪我言耄/惟聖之謨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의] 병이는 하늘의 끝에서조차도 떨어지지 않았으니, 이에 예로부터 들은 말들을 모아, 후학들을 깨우칠 수 있기를 바라노라. 아아, 어린이들은 공손하게 이 책을 받을지니, 내 말이 늙은이의 헛소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 책은] 다만 성인의 말씀일 뿐이다.
** 玆 : 아마 의미 없는 조사 같다.
** 罔 : 부정어다.
** 爰 : ‘이에’다. 乃와 같다.
** 庶 : 아마 ‘바라다’는 말일 것이다.
** 來裔 : ‘미래의 후손’이다. 후학들을 이른다.
** 匪 : 부정어다.
** 耄 : ‘늙은이가 하는 헛소리’다.
<집설>
饒氏曰/極/終也//極天罔墜/言人之秉彝/萬古常存也//爰/於也//裔/衣襟之末//來裔/謂後學也//嗟嗟/歎辭//我/朱子自謂也//耄/老而昏也
饒氏가 말했다. 極은 끝이라는 뜻이다. 極天罔墜은 사람의 秉彝가 언제나 항상 존재했다는 뜻이다. 爰은 於라는 뜻이다. 裔는 옷깃의 끝이다. 來裔는 후학들을 이른다. 嗟嗟는 탄식하는 말이다. 我는 朱子가 자신을 이르는 말이다. 耄는 늙어서 혼미하다는 뜻이다.
<집설>
此一節言集小學開後學之意
이 절에서는 小學에서 가르쳤던 글을 모아 후학들을 깨우치는 일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