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시안TV 2020. 5. 4. 10:34
반응형

 

* 철학서를 읽을 때는 아무 주석(특히 철학적 의미에 관한 주석)도 읽지 않고 원문 또는 번역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립니다. 저자의 의도도 있고, 주석자의 의도도 있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과 의견입니다. 아무 의견도 없이 남의 주석을 읽으면 그것은 주석자의 생각으로 자기 생각을 덧씌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먼저 스스로 이해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 본문 중 (음영)은 내용에 대해 제가 달아 놓은 주석입니다. 음영 처리가 안 돼 있는 [괄호]는 본문에 생략되어 있을 만한 말을 자연스럽게 읽게 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집어 넣은 말입니다. (음영)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될 때, 또는 내용을 파고 들고 싶을 때 읽으면 좋고, 음영 없는 [괄호]는 본문과 이어 읽으면 좋습니다. 간혹 대화체에 있는 <괄호>는 한 사람의 말이 길게 이어질 때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석)이나 [보충하는 말] 없이 하려 했지만, 고대 한문이 현대 한국어 어법과 상이하고, 논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순자》 번역에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김학주(金學主)의 2017년 번역, 자유문고에서 나온 이지한(安止漢)의 2003년 번역,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송기채(宋基采)의 번역, 그리고 각 책의 주석을 참고해서 직접 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데 참고하실 수는 있지만, 번역 결과를 무단으로 이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번역에 참고한 서적을 제가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용하실 때는 그 출처인 이 블로그를 반드시 밝히셔야 합니다.

* 《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형주와 상의한 것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으셨다면, 혹은 유익하다면 공감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 해도 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2020년 5월 4일 10시 34분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의 유학자입니다. 이름은 황이고, 높여 불러 경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순황 또는 순경은 모두 순자를 가리키는 말이죠. 순자는 기원전 298년에서 238년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황제가 한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바로 230년입니다. 진나라는 한나라를 시작으로 통일 전쟁을 시작하기 때문에, 순자가 산 때는 바로 전국시대의 가장 말미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보통 순자는 유학자로써, 혹은 형이상학자로써 맹자와 비교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맹자는 기원전 372년에서 289년까지 살았다고 하니, 맹자는 순자 보다 2~3세대 정도 앞이라 볼 수 있겠죠. 《사기》 「맹자순경열전」에는 맹자와 순자를 주로 해서 추기, 추연, 순우곤, 신도, 전병, 접자, 환연, 추석, 공손룡, 묵자가 함께 등장합니다. 이 중 묵자는 좀 더 앞 시대인 것 같으나, 묵자를 제외하면 대개 전국시대 중, 후기의 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이들은 제나라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나라에서는 위왕(재위 기원전 356~320)과 선왕(재위 기원전 319~301) 시기에 에 임치의 성문인 직문 아래 '궁'을 만들어 학자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이 학자 집단을 보고 직하학파라고 합니다. 위의 묵자를 제외한 모든 학자들은 아마 직하학파를 어떤 식으로든 거쳐 갔을 겁니다. 순자는 직궁의 좨주를 세 번이나 지냈다고 하니, 여러 모로 인연이 깊었던 것 같습니다. 직하학파는 우리가 편의상 학파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제로 그 사상적 경향이 아주 일정하거나 일원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유가니, 묵가니 하는 학파들처럼 한 개의 학파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신도나 순자, 그리고 순자에게서 배웠다는 한비자나 이사를 고려하면, 황제(옐로우)와 노자를 합쳐 통치하겠다던 황로학이 바로 직하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물론 순자는 황로학자도, 황제를 신봉하는 사람도, 노자를 따르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예로써 절제하고, 수양하며, 통치해야 한다는 순자의 생각은 한비자의 발상과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동기는 좀 다르지만요.

 

순자의 사상에서 중심 개념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단연 예일 것입니다. 우리가 도덕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쓰여야 하며, 왜 필요한지를 생각하는 것처럼, 순자는 그 모든 의문을 예에서 해소하는 것이죠. 순자는 의도가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예로써 다듬어야 비로소 인간답게 된다고 합니다. 옥석을 절차탁마하듯이 자기를 수양하고, 노력하고, 공부하라는 것은 유가의 공통적인 기조입니다. 《논어》에서 공자가 지겹도록 반복하는 말이기도 하고, 「대학」에도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로 등장하며, 맹자 역시 끝 없이 반복합니다. 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순자는 여러 덕목 중 예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공자는 인, 맹자는 의를 가장 숭상했는데, 이렇듯 유학자들 사이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각자의 접근 방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물론 같습니다. 열심히 수양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순자와 맹자를 많이 비교합니다. 이 비교의 원인 역시 접근 방식의 차이에 기인합니다. 맹자나 순자나 그 주장의 핵심은 모두 정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같습니다, 도덕적으로 살고, 도덕적으로 다스리고, 백성들을 교화합니다. 맹자는 사람이 도덕적일 수 있는 이유를 사람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순자는 반대로 접근합니다. 순자는 사람은 원래 도덕적이지 않고, 나태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이를 극복하고 백성들은 교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맹자에게 요나 순은 사람의 본성을 잘 보존하고 가꾸어, 이로써 백성을 교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입니다. 순자에게는 자신의 나태함을 극복하고 예로써 자기를 수양하며,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입니다.

 

왜 차이가 이렇게 생겼을까요? 아마도 맹자는 자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자사는 「중용의 저자로 보통 생각되는 만큼, 형이상학적 영향도 많이 받지 않았을까 합니다. 맹자는 정치 철학자이면서도 유심론적 경향을 보이는데, 그 원인이 여기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반대로 순자는 유심론이나 형이상학처럼 본성이나 하늘 따위에서 현상의 원인을 찾는 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비십이자에서 순자는 당대의 학자들을 평론하는데, 여기서 자사나 맹자가 오행의 영향을 받았다고 비난하죠. 다만 여기서의 오행은 추연의 오행설이 아니라 '仁義禮智聖'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1993년의 발굴에서 자사가 쓴 것으로 보이는 「오행」이라는 글이 나왔거든요. 맹자가 버릇처럼 하늘, 하늘, 본성, 본성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화수목금토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아마 추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예를 들어 전한의 동중서 같은 놈들은 공자를 외면서 화수목금토도 함께 지껄입니다. 그 직계 '선조'가 맹자인지는 저는 모르지만, 어딘가에서 족보가 꼬인 것 같습니다.

 

맹자는 본성이 선하다고 해서 '성선'이라고 했는데, 순자는 이를 의식해 본성은 악하다, 혹은 선하지 않다고 하여 '성악'이라고 했습니다. '성악'은 순자의 편 이름이기도 하죠. 사실 이 논쟁은 송명 시대에 와서야 좀 더 중요하게 부각되었습니다. 성리학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며, 세상의 이치는 무엇인가 따위였으니까요. 순자가 맹자와 궁극적으로 정치적 결론을 같게 내림에도 불구하고 순자가 성선과 성악을 인지하고,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은 전국시대 중후기에 이르면 심성에 관한 '사악'한 논쟁도 점점 고개를 처들고 있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반응형